베를린에서 일정을 마무리하다.
오늘은 드디어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날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으로 귀국하는 날은 내일이지만 전날 미리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하루 숙박하기로 했다. 이유는 독일 기차가 예고 없이 연착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잦다고 하여 불안했지 때문이다.
독일 철도청에 미리 휠체어서비스신청을 해놓은 상태.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고속 기차를 ICE(Inter City Express)라고 하는데 휠체어이용자가 이 기차를 이용하려면 리프트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탑승플랫폼에서 승차하기 위하여는 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단차가 높아서 리프트의 도움을 받아야 승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올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출발 전 20분 전까지 DB(Deuch Bahn) Information으로 가서 안내를 받도록 되어있다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일찍 짐을 챙겼다. 내가 묵은 호텔은 베를린 중앙역에서 2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다. 호텔 이름은 IBS 호텔이었고 체인점 비슷한 호텔로 어느 정도 수준이 보장되는 중저가 호텔이었는데 무난한 시설이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호텔 조식에서 연어 같은 해산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호텔에 머물렀을 때는 이 호텔과 비숫한 시설과 비용이었는데 호텔 조식만큼은 훌륭했다.
베를린에서 출발 시간이 오전 10시 18분. 10시 이전에 베를린 중앙역 DB(Deuch Bahn) Information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DB information이란 여행안내소의 의미로 보면 된다. 창구직원에게 이미 프린트한 메일 안내문을 보여주니 안내소 옆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라는 장소에는 대기 중인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나처럼 리프트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사람 같아 보였다. 휠체어를 탄 젊은 친구가 그의 어머니인듯한 여자와 함께 있었다.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자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여기가 리프트서비스신청한 사람이 기다리는 장소가 맞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그들도 나처럼 리프트서비스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여기가 기다리는 장소가 맞기는 맞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도 나와 같은 열차( ICE)를 탈 예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동지가 생겼다. 독일인인 그는 이런 경험을 많이 해본 사람일 테니, 그가 하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키가 큰 전형적인 게르만 사람인 듯한 직원이 왔다. 그는 리프트신청을 하고 대기 중인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프린트물도 소지하고 있었다. 아, 독일 사람들은 철저하구나. 독일 사람들의 업무처리가 철저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직원은 우리를 탑승할 장소로 안내하였다. 엘리베이터 층 표시 OG2층(지상 2층이란 의미로 보임)에 내리게 하였다. 베를린 중앙역은 새로 지은 역인데 엄청난 규모라서 처음 가서는 어디가 어딘 지 정신이 없다. 베를린 중앙역은 독일 전역을 오고가는 교통의 허브역활을 하는데 탑승플랫폼은 지하 3층과 지상 2층에 위치해 있다. 엘리베이터 숫자도 세보지 않았지만 열 대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혼자 이곳에서 기차를 탑승하려면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느 층에 내려야 하는지 한참 연구해야 할 것이다.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조작하였는지 엘리베이터가 하강하지 않고 상승만 한다. 기차에 탑승할 시간이 촉박할 경우 다른 이용자들이 하강하는 보턴을 눌러 작동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지연되므로 다른 이용객들의 이용을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해당 기차는 도착하였고 우리는 리프트를 이용해 기차에 탑승하였다. 어머니와 동행한 그는 내 뒤의 2인승 좌석에 앉게 되었고, 나는 앞의 2인용 좌석에 혼자 앉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올 때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은 갈 때와 달랐다. 베를린으로 갈 때의 창밖의 풍경은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약간 흐린 상태였으나 올 때의 풍경은 날씨가 화창해서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창밖으로 노란 유채꽃 같은 밭이 지나가고 푸른 들판이 지나가고 동글동글하게 다듬은 작은 나무들이 지나간다. 그러한 전형적인 논밭의 풍경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보듬어 주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국적인 풍경을 우두커니 보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다.
편안하게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중앙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 기차가 갑자기 정차한다. 무슨 이유일까, 곧 움직이겠지 생각했는데 한참이나 정차하였다. 아까 베를린중앙역에서 출발할 때 이 기차가 조금 늦는다고 방송을 했을 텐데 내가 알아먹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베를린중앙역에 만났던 휠체어를 탄 젊은 친구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대충 기억에 의하면 사고로 인하여 이 기차가 10분 정도 연착할 것이라는 말을 한 것 같다. 기차는 약 10분가량 정차하다가 다시 움직인다. 기차는 플랫폼에 정차하였고 사람들이 내린다. 예상대로라면 리프트를 제공하는 역무원이 먼저 와있어야 한다. 그런데 리프트를 제공하는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기차 역무원은 조금 기다리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로 인하여 기차가 연착되었을 뿐 아니라 도착 플랫폼도 바뀐 것이다. 역 측에서 이런 상황에 대처하느냐 시간이 걸린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시 찾은 호텔은 처음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묶었던 호텔 Intercity Hotel. 이 호텔은 역의 옆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위치해 있다. 이제 보름 정도의 독일 일정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다. 보름 정도 쓸데없이 쏘다니는 일이 이제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베를린의 역사, 문화, 예술을 제대로 접하지는 못하고 껍데기만 보았지만 베를린의 공기를 맡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쓸데 있는 여행이었다.
해외에서 보름 이상을 지내게 되면 슬슬 김치찌개와 라면 국물 냄새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일정이 신경이 쓰이게 되고 긴장을 하게 되므로 피곤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