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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다니

눕코노미를 타다.

by andre


오늘은 귀국하는 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DB(Deuch Bahn, 독일철도청) 측에다 미리 휠체어리프트 서비스 신청을 해두었다. 아침 일찍 호텔 조식 뷔페를 먹고 짐을 챙겼다. 점심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적당히 먹기로 했다. 중앙역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메뉴를 골라보지만 마땅치 않다. 아직 기차 시간은 많이 남은 지라 오랫동안 눈치 보지 않고 죽치고 앉아 있을 자리가 필요했다.

푸드코드 제일 안쪽에 위치한 Fish and chips 코너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어떤 메뉴를 원하느냐고 묻는데 다른 메뉴는 잘 모르겠고 Fish and chips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런데 나온 메뉴는 Fish는 빠지고 chips만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매장에서는 Fish와 chips 등 여러 메뉴가 있었고 그중에 선별적으로 골라 구입하는 매장이었다. Fish를 주문하려면 조금 멀리 있는 Fish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켜야 하는데 chips 쪽으로만 손가락을 가리킨 것 같다. 어쨌든 먹은 만큼 계산을 하니 손해 볼 것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점심 식사 후 화장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독일에서는 화장실을 찾기도 어렵고 있어도 대부분 유료이다. 푸드코트 내의 화장실 사용료는 1유로. 그런데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입구가 좁아서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는 들어갈 수가 없다. DB Reisezentrum(독일 철도청 여행안내소)에 가서 화장실 신세를 지려고 하였으나 그 안에도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역 광장 가운데 장애인용 화장실이 하나 보이는데 문이 잠겨있다. 결국 DB information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니 직원이 키를 가져와서 열어준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역에 공용 화장실이 없다니 참 미스터리한 일이다.


DB information에 가서 기다리니 휠체어 리프트 담당직원이 나타났다. 그런데 나타난 직원은 내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처음 도착한 날에 나를 안내해 주던 사람이다. 반가웠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구면인 사람이니 더 마음이 놓였다. 그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자기에게 10유로의 팁을 준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직원의 도움으로 S-bahn을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 도착 시 또 다른 역무원이 기다렸다가 안내한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만 안내한다. 역무원의 안내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렸다. 2층이 출국장이라고 하는데 워낙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내가 탈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 무작정 계속 가봐도 아시아나 로고가 쓰인 체크인 카운터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마침 한국 여성인 안내원을 만났다. 그녀는 계속 쭈욱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계속 가도 보이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여기저기 물어봐도 다들 대답이 시원치 않다. 그러던 중 공항 소속의 유니폼을 입은 중년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소지한 스마트폰으로 항공편명 등 세부적인 내용을 검색하더니 확실히 알려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조금 더 가서 한국인 직원이 인사하며 맞이하는 것을 보니 여기가 아시아나항공 카운터가 확실하다. 아직 체크인 시간도 많이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아시아나 체크인 카운터에는 한국인 직원이 여럿 있어 별 걱정이 없었다. 일전에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서 귀국할 때는 체크인 카운터에 한국인이 없어 원활하지 못한 언어소통으로 수화물처리에 착오가 생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화물을 위탁하고 기다리면 휠체어서비스 직원이 온다고 하여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인상 좋은 남자가 휠체어를 가지고 나타난다. 출국장인 B42게이트는 한참 멀다. 그는 여기서 기다리면 출발 시간이 되어 다른 직원이 나타나 탑승절차를 도와줄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팁으로 5유로를 주었더니 좋아한다.


공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쉬움과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이 교차한다. 베를린의 속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간다는 아쉬움이 있는 반면 음식이나 잠자리가 여의치 않아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꼭 가보고 싶은 베를린을 돌아다녀 봤으니 직성이 좀 풀렸으나 베를린의 껍데기만 보고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베를린이 어떠한 도시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감을 잡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좋은 경험을 한 셈이다. 다시 올 기회가 있을 것인가, 내 나이가 적지 않은 터라 장담하지 못한다.

공항 대합실에서, 나를 한국으로 데려다 줄 아시아나 항공,

드디어 탑승. 다른 항공사처럼 장애인은 먼저 탑승. 그런데 자리가 많이 비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타면 자리가 메꿔 질려나 했는데 출발 시간이 다되어도 자리는 많이 비어있다. 나는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었다. 혹시 이번 비행에 눕코노미를 타게 될 지도! 비행기가 출발한 이후에 좌우를 들러보고 뒤를 돌아보니 모두 3인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옳거니! 이번에 눕코노미를 타는구나, 눕코노미란 '눕다'와 '이코노미'의 합성어로 이코노미 좌석인데 옆자리가 비어 누워가는 것을 말한다. 나는 3인석의 팔걸이 2개를 위로 젖히고 누워갈 수 있었다. 비즈니스석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호사스러운 일이다. 오른쪽 좌석열에서는 누워 곤히 자느라 비행기 안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코를 드르렁 거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비수기에 날짜를 잘 고르면 눕코노미를 탈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이번 여행은 이렇게 편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한 여정이었다.

All's Well That Ends Well!

텅텅 빈 비행기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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