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박물관 섬에서 보지 못한 다른 박물관을 들러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신박물관(Neue Museum). 베를린에서 신박물관(Neue Musuem)이니 구박물관(Alte Museum)이니 하는 구분은 어떻게 구분되었을까? 전시된 물건이 오래된 것이냐 최근의 것이냐의 구분은 아닌 것 같다. 박물관건물이 지은 지 오래되었느냐 최근이냐에 따라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신박물관은 이집트 위주로, 구박물관은 로마, 그리스 위주로 전시한 것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도 있는데 시간상 여기는 보지 못하였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페르시아의 이스타르 문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볼만할 텐데 내가 방문 중에는 수리 중이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그전부터 수리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수리할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신박물관은 입구부터 계단이 있지만 옆으로 완만한 경사로도 있었다. 티켓은 7유로. 모든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는 통합티켓도 있었지만 하루만 유효하다니 하루 만에 모든 박물관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나는 느긋하게 이것저것 살펴보는 스타일이라 하루에 기껏해야 두 군데 정도이다. 그만큼 베를린에서의 박물관은 전시물이 방대하기도 했다. 하인리히 술라이만이 발견한 트로인 문명에 관한 것, 이집트에 관한 것 등이 있었고, 2층에는 청동기 문명에 관한 것도 있었는데 어느 코너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전시물 받침대만 보이고 전시물은 모두 사라졌다. 추측컨대 내부 재배치 문제로 임시 보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외국으로 출장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시물이 출장 갈 경우 전시물 중 일부만 가지 이렇게 한꺼번에 모두 없어지지는 않을 테니
이집트코너에서는 이집트 기자에서 발견된 유물이 많다. 미이라도 몇 개 보인다. 유럽에서는 어느 박물관이든 기본적으로 미이라 한 두 개 정도는 갖추어 놓아야 구색이 맞는다. 영국 대영박물관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구색은 다 갖추어 놓았다. 물론 유명하고 진귀한 것은 카이로에 다 있겠지만.
신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물건이 있다. 이집트 네프리티티 흉상. 이 전시물이 어디 있을까, 1층에 올라가니 멀치감치 사람들이 멀리서 무언가 사진을 찍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팻말이 하나 보이는데 '이 지점부터 플래쉬 카메라 금지'. 아! 여기구나! 어느 나라 박물관이던 국보급 물건이 있게 마련이다. 파리 루브르에서는 모나리자가 국보급이듯이 여기서는 네프리티티 흉상이 국보급이다. 지금 보아도 범상치 않은 얼굴이다. 당시 실제 인물의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얼굴 형태는 조그마한 크기인데 단아하고 빈틈없는 눈빛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 눈동자는 채색이 안되어 백내장이 있는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이 아쉽다. 이집트 아케나톤의 왕비였던 그녀, 수 천 년 전의 왕비 모습을 지금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 만난다는 일은 가슴이 뛰는 일이다.
팔 없는 청동상도 보인다. 어떡하다 팔이 떨어져 나갔을까. 금으로 된 모자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앗수르 왕 시대의 물건도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유물 옆에는 독어로 설명이 되어 있고 밑에는 영어로도 설명된 내용이 있었으나 독해력이 시원치 않은 터라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두어 시간 관람하니 슬슬 피곤해지기도 하다.
다음 행선지는 구박물관(Alte Museum). 이 박물관은 정면에서 보면 아주 멋지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신전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사이즈도 매우 크다. 정면에서 보니 모두 계단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독일에서는 어느 박물관이나 틀림없이 휠체어장애인이 입장할 수 있는 리프트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걱정하지 않았다.
좌우로 살펴보니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장애인입구(Barrier frei) 안내표시가 보인다. 그럼 그렇지! 안내표시를 따라가니 작은 문이 하나 보인다.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다. 무슨 보턴이 보인다. 아, 이 보턴을 눌러야 하는구나. 보턴을 누르니 무슨 신호가 가는 것 같기는 하다. 마이크폰에서 무슨 말이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겠다. 한참을 기다리니 그제야 수위 같은 사람이 문을 열어준다. 아마 평소에는 잠가놓고 필요시에만 개방하는 것 같다. 그는 곧 다른 직원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나타나서 나를 안내한다. 평소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듯한 통로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비로소 1층 티켓 파는 장소다. 티켓코너 직원은 나에게 장애인신분증이 있냐고 묻는다. 할인이 된다고 한다. 나는 장애인복지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1층부터 입장하니 고대 그리스 물건부터 보인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유물인 암포라(물병)가 많이 보인다. 붉은색 토기에 검은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전형적인 그리스의 토기이다. 오디세이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 페리클레스의 초상도 보인다. 전시실 가운데는 원형으로 된 광장 비슷한 장소가 기둥과 신상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스 신들을 형상화해 놓은 것인가, 신상의 숫자를 모두 세어보니 15개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12 신은 아닌 것 같은데 대충 이름을 보니 그리스 신들의 이름도 보인다.
2층에는 고대 에투루리아 인들의 유물을 시작으로 로마시대의 물건들이다. 로마시대의 물병(암포라)은 짙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 확실히 그리스 시대와는 다르다. 에투루리아인의 경우 석관이 유명하다. 석관이란 사람이 죽었을 때 안치하는 돌로 된 관을 말하는데 석관 외부에는 양각으로 된 그림이 새겨진다. 상당한 귀금속으로 치장된 귀부인의 조각상도 보인다. 로마 시대 유명한 사람들의 조각상도 많이 있어 흥미로웠다.
클레오파트라의 조각상이 보인다. 기원전 1세기 중반경 클레오파트라가 로마를 방문한 즈음에 만들어졌다니 실제 모습과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클레오파트라 두상의 앞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이지만 옆모습을 보니 콧대가 미끈하고 범상치 않다. 그녀의 두상은 한 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율리우스 시이저의 두상 옆에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클레오프트라의 두상과 율리어스 시이저의 두상을 나란히 배치한 것은 사후에서라도 둘이 정을 나누도록 박물관 측에서 배려하지 않았는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로마 통치 시대 이집트 미이라 관에서 발견된 죽은 자의 초상화도 흥미롭다. 이 그림을 통하여 수 천년 전 사람 얼굴을 엿볼 수 있으니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오늘날 예수의 초상화를 보면 모두 팝페라 가수 조시 그로반이나 영화배우 리암니슨처럼 곱상하게 그려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세 성당의 이콘(성당에 그려진 예수님의 초상화)화를 보면 다르다. 이콘화에 등장하는 예수의 얼굴을 보면 미끈한 귀공자 스타일의 얼굴이 아니라 막 어디선가 농사일을 하다가 돌아온 시골 사람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얼굴 모습이 그 당시 사람들의 실제 모습이라고 보아야 한다. 얼마 전 BBC 방송에서 예수 당시의 중동 지방 사람 유골을 토대로 예수의 모습을 재현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은 금방 밭에서 일하고 온 농부의 모습이었다.
여인의 목걸이, 장식과 남성의 머리띠 장식이 보인다. 이것은 미이라 앞에 붙은 초상화에 등장하는 장식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있다. 이 여인의 초상화는 오늘날 보아도 시간적 간격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생한 모습이고 부잣집 여인으로 보인다.
로마 황제들의 두상들도 보인다. 도미티안,하드리안, 아우렐리우스 등 그런데 마드리드 고고학박물관에서 보았던 아우렐리우스는 좀 늙어 보였는데 여기서는 훨씬 젊어서 제작된 듯하다.
박물관 섬이 좋다. 이것저것 볼 것도 많고 햇빛이 따사하게 비추고 다른 곳보다 찬바람이 덜하다. 베를린 대성당 앞 잔디광장에는 분수가 넘치고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슈프레 강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박물관 섬의 여유로운 풍경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