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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l 06. 2024

생각보다 빠른 회복

약을 먹기 시작한 첫 주는 잠에 취하다시피 살았다. 이직과 병원 진료를 같은 날 시작했기 때문에 긴장도는 두 배로 커졌다. 출근 후 모든 신경을 일에 집중하고 퇴근하면 정전되듯 정신을 잃고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그다음 주 병원에 갔을 때 나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자 잠이 오는 약은 조금 줄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약에 적응하느라, 일에 적응하느라 멍하고 피곤한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는 지난주보다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고, 일할 때는 증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점점 안심하기 시작했다. 담당의도 약이 잘 맞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호전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예상을 이야기했다.


글쓰기 수업도 다시 시작했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걸 점점 꺼리기 시작할 때쯤, 가족처럼 남자 친구처럼 언제 만나도 괜찮을 만한 이들을 찾게 되었다. 그들과 수업을 들을 때 나의 속이야기를 모두 말할 순 없었지만, 함께 일상을 나누고 서로 감정을 공유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끝나고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마치 좋은 감정이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담을 받은 지 한 달, 약을 먹은 지 고작 이주만에 나는 괜찮아지고 있었다.


다음 날 상담센터에 가서도 상담가에게 밝은 표정으로,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찢긴 나의 마음을 대화를 통해 봉합된 이야기, 거지 같던 직장생활이 이직한 이후로부터 다닐만해진 이야기, 사람을 기피하다 같은 글을 쓰는 이들을 만나면서 웃게 된 이야기.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고 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가족에게 나의 상태를 말하고 병원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표현한 이야기, 더 이상 방어를 하지 못하는 어린 이은이 아닌 나를 지킬 줄 아는 어른 이은이 된 이야기.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상담가는 늘 그랬듯 촉촉한 눈과 그날은 유독 부드러운 미소로 날 바라봐주었다. 마치 고생했다는 듯, 이제 금방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거라고 말해주는 듯이.


상담가는 이제 상담을 종결해도 될 것 같다며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 또한 그래도 되겠지만 조금 더 고민하고 연락을 준다는 말을 남긴 채, 상담센터를 나왔다. 유독 맑은 하늘과 선선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이렇게 금방 괜찮아질 거였다면 좀 더 마음껏 울걸.‘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혼자 하며 걸었다, 기분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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