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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l 08. 2024

괜찮아진 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상담 종결에 대해 고민했다. 평소에 어떤 일이든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담을 하고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센터에 전화해 상담사와 맞는 시간으로 예약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괜찮은 기분이 그대로 유지되는 걸 보면서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그날만큼은 모든 걸 안도하고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었다.


일상이 더 수월해진 느낌이었다. 마지막 상담을 앞두고 어느 날, 퇴근 후 결혼한 언니 부부를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나를 언제나 응원해 주는 두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하며 시간을 보냈다. 즐거웠다.


그리고 그다음 주는 제일 친한 친구들을 만났다. 만나면 카페에 앉아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이야기하느라 정신없는 우리는 그날도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만나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사소한, 어쩌면 깊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나의 연애에 관해 이야기가 나왔다. 내 친구들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앞으로의 둘의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걸 아는 친구들은 나를 늘 걱정하며 종종 나의 연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비추거나 조심스레 헤어짐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인 걸 알면서도 그날은 유독 걱정하는 말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워낙 농담을 편하게 주고받는 사이임에도 작은 농담 하나가 나를 향한 화살처럼 다가왔다. 내가 의지하고 아끼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체가 불편했다.


다음 날 있을 출근을 위해 인사를 나누고 집에 가기 위해 혼자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주 오는 공간임에도 빨리 벗어나 친구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나의 그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집 앞으로 나와달라고 말했고,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간 걸 아는 그는 의아해하며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염려했다.


이십 분 정도 되는 거리를 지나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지금 내가 너무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받았던 상처가 스쳐 지나가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다시 모든 게 다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하염없이 울며, 한 달 동안 쌓았던 괜찮은 감정들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남자 친구는 당황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며 그저 안아줄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려 했지만, 이미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불신과 믿음, 상처와 사랑, 독립과 의지. 상반되는 것들 사이 그 어디선가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헤매다 길을 찾은 듯했지만 그날 나는 결국 다시 또 돌고 돌아 원점, 아니 더 깊고 어두운 동굴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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