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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l 11. 2024

내가, 내가 아닌 삶

동굴에 갇혀버린 난 점점 어두워졌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정말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만남을 꺼렸고, 혼자 산책하거나 바람 쐬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 집에 숨어있기 바빴다. 지난 몇 년을 노력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터득했지만,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릿속은 가득 찼다. 거기다 얼마나 무기력한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직장에 출, 퇴근하고 먹고 자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시간은 가만히 누워있거나 잠에 들거나 눈물을 흘리며 이 상황을 원망하는 것으로 가득 찼다.


그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애써 웃음 지어 그때 기억을 잊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그 문제가 언급됐다. 그는 어느 날은 사과를, 어느 날은 변명을, 어느 날은 화를 냈다. 수없이 헤어져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없는 삶은 상상만 해도 오열하게 되는 이유였고, 불안 증세는 더 심해졌다. 이 상황에서 나는 그와 잘 지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 간의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멀어질 대로 멀어진 마음과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신뢰 관계에서 나는 그를 미워했고, 원망했고, 의심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지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이 심하게 격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하더니 소리를 질렀고, 심한 말을 내뱉으며 서로를 찔렀다. 아무리 다퉈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추락할 대로 추락한 우리 사이 속에서 나는 혼자 남기라도 하면 이 감정을 더 감당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쏟아낸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원망과 사랑하는 감정 사이에서 미친 듯이 휘몰아치면 혼란스러워했다. 이렇게까지 된 상황이 마치 내 탓인 양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심할 땐 자학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숨 죽여 우는 게 전부였다.


분명 나 자신은 그대로 존재하는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사람도, 사랑도 피한 채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모습.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아등바등 살아오던 모습은커녕, 언제든 무너져도 언제든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무력한 모습으로. 어딘가 있을 신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눈앞에 놓인 약을 의지하며 사는 모습.


이토록 고장 난 삶을 사는 건 괴로움 그 이상이었다. 고칠 수라도 있다면 참 다행일 텐데 고쳐지기는 할지, 고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고친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지. 희망 없는 삶은 그 어떤 삶보다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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