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로 휩싸인 채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때로는 그가 동행해 주었지만 그날은 홀로 가는 그 길조차 나에게 큰 스트레스와 긴장을 줬다.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 병원에 들어설 때부터 나와 같이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내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다른 이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호명이 되면 진료실 2번으로 들어간다. 늘 차분하고 다정한 담당의가 나를 쳐다보면 잘 있었냐는 질문을 듣기도 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설명하게 된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나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제법 우습다.
“이번 주는 힘든 날이 많았어요. 자주 울었고, 혼자 있으면 스스로를 자학하며 소리도 지르고, 또 어느 날은 그러다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 “힘들게 지내셨겠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 그러게. 나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한 걸까. 워낙 잘못된 생각이라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담당의마저 나를 재단할까 두려웠던 탓이겠지.
“삶을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오랜만에 들었어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도 부모님 얼굴 생각하면서 버텨요.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생각하고요.”
내가 담당의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건, 표정으로 티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늘 놀라지도, 그렇다고 나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그저 그랬냐는 듯, 고생했다는 듯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담당의는 내가 워낙에 생각과 고민이 많고 예민한데, 스트레스가 넘치는 상황 속에 계속해서 있기 때문에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진료 초반 갑자기 공황이 올 때 먹으라고 준 ‘필요시’ 약을 더 처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필요시’ 약이 없어도 될 정도로 약을 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약 잘 챙겨 드시고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상황을 접해보세요.”라고 말이다.
진료를 마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멍하니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약을 받기 위해 소파에 앉아 있는데 마치 모든 게 잘못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세상은 늘 그렇듯 똑같이 돌아가는데 나의 세상은 점점 더 망가지고 헝클어지고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보다 부피가 커진 약 봉투를 들고 병원 밖을 나와 인도를 걷는데 쌩쌩 달리는 차를 바라보며 치이는 상상을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높은 건물 위에 올라가 떨어지는 상상도 했다. 집에 가기 위해 올라탄 차 안에서 세게 달려 차가 전복되는 상상을 했다. 그저 멍하니 나는, 포기하는 그러니까, 삶을 포기하는, 죽는 상상을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