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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l 22. 2024

공황장애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무기력과 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우울함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우선 내가 이렇게 된 원인을 찾으려고 아등바등 고민하면 ‘현재’가 아닌 ‘과거’에 집중하게 된다. 우울증에 관한 어느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과거 일을 세 번 이상 생각할 경우 그 기억이 장기기억이 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에게 받은 상처는 세 번이 아니라 삼십 번, 아니 삼백 번은 생각한 것 같다. 장기기억으로 남은 그날의 상처와 그 이후 끝없이 다퉜던 지난날들은 나에게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상처받기 전에 내가 우울하지 않았냐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나에게 우울은 기쁨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감정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혼자 침대에 누우면 오늘 실수한 건 없었는지, 어떤 사람의 행동을 떠올리며 날 싫어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군가는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왔다. 나는 왜 그 시절에도 사람과의 관계를 그리도 힘들어했을까.


다시 또 돌아가 보면 이십 대 초반에 했던 어설픈 연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해서 만났다기보다는 연애라는 걸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만남은 나를 넘어뜨리려고 했고, 사랑으로 시작한 연애는 아픔과 상처로 범벅되어 끝나고 말았다. 그 속에서 나는 ‘영원’은 없다고 믿었나 보다. 내가 끝낸 연애임에도 때로는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슬픔에 빠져 지낸 날도 많았다.


왜 나는 버림받는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또 과거로 돌아가 보면 어린 시절이 된다. 부유하지 않았던 우리 집.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쯤 아빠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우리 집은 기울기 시작했고, 엄마는 나를 집에 홀로 둔 채 일을 하러 나갔다. 지금이야 맞벌이가 흔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정주부가 많았고, 한참 엄마 손이 필요했던 나는 버림 아닌 버림받은 기분을 가지며 살았다.


그렇게 끝없이 나는 과거로 돌아가 현재 상태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는다는 명목하에 되새겼던 과거의 기억은 결국 나를 우울함에 빠지게 했고, 모든 과거가 나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나를 괜찮아지게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생각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구렁텅이 속에 넣어버렸다.


어지럽고, 심장 통증이 느껴지는 증상.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없고, 복잡한 곳은 도무지 갈 수 없는 상황과 같은 공황 증세는 무기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무기력은 나를 우울로 빠지게 해 우울증이라는 새로운 병을 껴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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