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이후로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그 전보다 반의반 이상은 줄었다. 이전에도 적었듯 가까운 친구와 만나는 것도, 심지어 가족과 함께 있는 것도 불편할 때가 많았기에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나았다.
언제는 이런 날도 있었다. 상태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중학교 친구와 몇 년 만에 보기로 했다. 중학생 시절 철부지 모습으로 매일 시간을 보내고 힘든 시간은 서로 위로하며 지냈던 터라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예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생각해 놓았다. 하지만 만남 며칠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친구에게 연락을 남겼다.
“주연아, 내가 지금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이번에 보기 힘들 것 같아. 너무 보고 싶었는데 진짜 아쉽다.”
간단해 보이는 저 두 문장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나의 견뎌낼 수 없는 상태와 그로 인해 친구와의 약속을 어겨야 하는 답답함, 그렇다고 돌려 말하자니 오히려 솔직히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털어놨지만 괜한 부끄러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친구는 흔쾌히 괜찮다고 말해줬다. 시간 나면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면 주연이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여러 명이 모이기로 한 날에도, 기대감에 잔뜩 부푼 날에도, 오랜만에 보기로 한 날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다독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 우린 언제든 볼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함께 겪고 나서 내 주변에 사람들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일 년에 한 번만 봐도 유지되는 관계도 있겠지만, 여러 번을 봐야 유지되는 관계도 있고, 어쩌면 그게 관계의 결속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보다. 혹여나 내가 자꾸 약속을 미루고 취소하거나 만나지 않다 보면 관계가 틀어지진 않을까, 그러다 결국 너와 나 우리가 단절되는 날이 올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본인의 시간이 갑자기 비게 되거나 기대했던 게 물거품 됐다고 느꼈을 수도 있는데, 불편한 티를 내기보다 나의 안부를 먼저 물었고 나의 상태를 걱정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좋다며 향초와 룸스프레이를 선물로 보내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가끔은 모두 포기하고 싶고 내려놓고 싶다가도, 이토록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 덕에 견디고 버틸 수 있다.
글을 쓰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를 응원해 주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나의 항우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