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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은 Jul 29. 2024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어도

이제 병원에 다닌 지도 6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진료 날,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짧으면 6개월이라고 대답을 들었던 게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6개월이라는 시간조차 길게만 느껴졌고, 6개월이 지난다면 온전히 괜찮아질 나의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상태는 그때보다 심해지면 심해졌지, 드라마틱한 개선은 없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최악의 상태일 때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첫 번째, 자학을 멈추게 되었다. 감정이 격양되면 어떤 형태든 나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정신이 차려지는 날이 많았다. 분명히 나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나는 나 자신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학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더 아프게 하고 상처받게 할 뿐, 스스로를 아끼기로 다짐했다.


두 번째, 감정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날이 전보다 적어졌다.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지거나 남자 친구와 다퉜을 때, 새로운 프로젝트가 무산됐을 때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찾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있고 그러다 보면 감정이 끝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생각하며 그 감정을 멀리서, 더 멀리서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 감정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버리면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조차 없으니까 말이다.


세 번째, 나 자신에게 여유를 주기 시작했다. 완벽주의적 성향과 꼼꼼한 성격을 소유한 탓에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고 사람 관계에서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무척 애썼다. 쉬는 날에도 무작정 쉬기보다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생산적인 활동을 무조건 하려고 했다. 생산성은 나에게 족쇄가 되었고 마음 편한 휴식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노래 하나를 틀어놓고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려고 연습을 한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배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건 혼자서 된 게 아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이가 끝없이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무너질까 봐 걱정할 때면 지금 변한 건 없다고,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처량해 보일 때면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건넸다. 그저 눈물이 투둑 떨어지는 날이면 말없이 나를 꽉 안아주며 토닥여줬다. 아직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어도 조금씩 나아져 가는 나를 보며 결국 사람은 사람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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