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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곳, 잔세스칸스

by 이 은

비 내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우리는 이제 다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은 풍차의 도시 잔세스칸스에 들린 후 프랑스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인민박 여자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차려주신 아침을 먹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제 이 든든한 한식을 못 먹을 생각에 아쉽기도 했고,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는 게 아직은 어색했다. 사장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온은 쌀쌀했지만 날씨는 무척 좋았다. 하늘이 맑고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더 기대됐다. 영국에서 웨일스 카디프를 갔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도시가 아닌 시골로 떠나는 기분은 꽤 설레는 기분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잔세스칸스는 거리가 가까웠다. 기차로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아무래도 가까웠기에 오늘 일정에 넣었지, 아니었으면 프랑스로 넘어갔어야 했기에 가지 못했을 것 같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느라 피곤했지만 그래도 부지런을 떤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금세 도착한 잔세스칸스.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주디언니에게 계속 "잔센슨카스라고? 잔센스카스? 뭐라고?"라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언니는 "잔세스칸스! 이제 외울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물어봤다. '잔세스칸스.' 도착하자마자 애정하게 됐다. 길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한적한 동네만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암스테르담과는 또 다른 모양의 건물들을 보니 신기했다. 한국도 도시와 시골 분위기가 다르듯, 네덜란드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강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잔세스칸스에는 잔강이 있다.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고 해도 청량한 강의 모습을 감출 순 없었다. 사이좋게 줄지어 있는 집들 또한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저기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

마치 예전에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 앞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곳곳이 하나의 풍경인 곳 앞에 서서 수줍지만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어떤 서양인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펼치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심지어 풀을 뜯고 있는 동물도 있었다. 자연 그 자체였다. 몸과 털은 양 같았는데 얼굴은 염소 같았다. 어떤 동물인지 너무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봤지만, 아무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주디언니와 '잔세스칸스 어떤 신기한 동물'이라고 불렀다.

길을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어떤 신기한 동물'은 사람이 지나가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직 풀 뜯어먹기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니면 잠을 자거나. 그 풍경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다행히 구름도 점점 걷혀 맑은 하늘이 되었다.

풍차의 나라답게 풍차도 색깔별로 있었다. 점점 더 동화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내가 잔세스칸스에서 태어났다면 에세이가 아닌 동화를 썼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클롬펜 박물관

그리고 중간에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 '클롬펜' 박물관이 있어서 들렸다. 나막신도 풍차처럼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신어 보기도 했는데 바닥을 탁탁 치는 소리가 경쾌했다. 직원은 나막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네덜란드 전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포퍼처스

박물관 구경 후 허기가 져서 카페에 들어왔다. 암스테르담에서 아이스를 몇 번 마셨다고 다시 따뜻한 라테도 돌아왔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통 팬케이크 같은 '포퍼처스'를 먹었다. 보기에는 그냥 밀가루를 구운 느낌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은은한 바닐라 맛이 입에 착 감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네덜란드에 은근히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몇 있다. 그렇게 우리는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잔세스칸스 입구에 있는 우체통

동화 속에서 다시 나와야 한다니 조금 섭섭했다. 그래도 이제 다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을 갔다가 프랑스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 더 꿈같은 풍경을 만나겠지. 얼마나 황홀할까. 기쁜 상상에 잠기며 다시 길을 나섰다. 벌써 다섯 번째 떠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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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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