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키 Jul 19. 2024

둘.

나다운 외 세명 손님 입장하세요


이름이 호명된 사람들이 손을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보통 회사들의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인데 이 식당은 11시부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는 사람들이 많다.


사무실의 팀장이 극찬하는 유명한 평양식 만둣국인데 다운은 ‘뭐가 맛있다는 거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먹는 배만 채우면 되는 점심 메뉴 중 하나이다.


4인석 식탁에 앉아 만둣국을 먹고 있는데, 다운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진다.

스마트폰의 발신번호를 확인하니 할머니를 케어해주고 있는 센터이다. 발신자 번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숟가락을 쥐고 있던 오른손에 힘이 빠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숟가락을 만둣국 그릇 안으로 넣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다운이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믿음 센터입니다. 오전에 화숙 어르신이 의자에 앉다가 실수로 넘어지셨는데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고, 점심도 잘 드시긴 했거든요. 그래도 보호자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계속 부재중이어서 아드님께 전화드렸어요.


다운은 전화를 받으며 앞에 앉아 만둣국을 먹고 있는 팀장과, 차장의 그릇을 확인한다.

저들은 거의 다 먹어 가는데, 빨리 통화를 끝내야 저들의 속도에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상사보다 늦게 먹으면 안 된다.


센터 직원에게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지금은 안된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라도 했다가는 통화가 길어 질게 분명하다.


 네, 제가 아버지에게 전달해 드릴 게요.
아버지가 일 하고 계시면 전화를 못 받긴 하세요.


통화 종료 후 바로 다운은 숟가락을 쥐고 허겁지겁 만둣국을 떠먹기 시작한다.


제발 점심시간 만이라도 혼자 밥을 먹는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입안 가득 만두를 집어넣는다.


다운은 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할머니가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 더 걱정이 된다.

그 여자에게 호구짓을 하고 있느라 전화를 못 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 돈은 또 얼마나 날리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될 뿐이다.




다운의 아버지인 태산은 화숙의 막내아들로 부모님과 누나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그 과하게 받은 사랑을 정작 본인의 자식에게는 나눠주지 않고 타인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여자들에게 나눠 주는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


태산은 어렸을 때부터 나이 차이가 나는 친누나들의 연애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소위 말하는 [여자들에게 잘 먹히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남자가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입시학원에서 만난 재수생 누나를 시작으로 공백기 없는 사랑의 시간들을 보냈는데, 특히 연상의 여자들에게 먹히는 타이프였다.


그래도 학창 시절엔 모범생이었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을 하는 아들이었다.


Y대학교에 입학하여 부모님과 누나들의 자랑이 되었고, 자신들의 노후는 이 아들이 책임져 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는지,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땅을 팔아 아들에게 컴퓨터 학원을 차려주기까지 했던 화숙이었다.


그렇게 집안의 자랑이었던 막내아들에게 학원 원장님이라는 타이틀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이제 참한 며느리만 들이면 된다고 판단이 되어 중매쟁이에게 부탁하여 중신으로 결혼을 시켜 들어온 며느리가 다운의 엄마였던 미숙이였던 것이다.


태산은 부모님의 계획대로 선을 보았고, 선자리에 나온 미숙은 연예인으로 치자면 [조용원]과 닮은듯한 외모에 이미 결혼을 결심한 듯했다. 결혼을 전제로 6개월간 교제를 하면서 결코 가볍게 만나거나,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조용원]을 이길만한 여자가 주변에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태산은 현재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현재의 여자에게는 진심을 다하던 사람이었다.


오늘 태산이랑 미숙이 궁합 보고 왔는데 둘이 궁합이 아주 좋단다


화숙은 점쟁이에게 원하던 대답을 듣게 되었고,  남동생 장가보낼 준비를 하라고 큰 딸에게 전화로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화숙과 딸들은 미숙이 점쟁이가 점지해 준 태산의 천생배필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렇게 태산과 미숙은 길일이라고 받아온 날짜에 결혼식을 올렸고, 3박 4일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바로 혼인 신고를 하고 진짜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다운이 태어났다. 그것은 화숙에게 있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우승을 한 것 이상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전 01화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