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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키 Jul 19. 2024

2. 수프카레

백수지.


9월인데도 한여름 같다.

오사카의 여름은 정말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해 준다.


"원래 9월까지가 여름인 거야"

텟베(哲平 - てっぺ)가 일본어로 수지에게 말했다.


"여름엔 그나마 시원하다는 홋카이도를 가야 하는데, 수프카레는 여름에도 팔겠지? 나 홋카이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정말 가보고 싶어"
수프카레 속의 구운 채소와 닭고기가 꿀맛 / 치즈가 사르르 녹아 앉은 따뜻한 쌀밥과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천하일미 <사진 - 개인소장용>
"홋카이도는 겨울에 가야 볼만한 게 많다고. 그리고 수프카레도 추울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들 하던데...
그런데 나 정말 카레는 싫어"

사실이 그렇다. 홋카이도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야만 한다. 그게 수지가 생각하는 홋카이도다.

홋카이도 = 눈


어제 퇴근 후 직장동료와 너무 덥다는 이유를 하나 만들어서 이자카야에 들러 생맥주(生ビール)를 몇 잔을 마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장으로 [수프카레]한 그릇 먹었으면 딱 좋겠다.


물론 오사카에도 수프카레를 파는 곳은 많다.

하지만 오늘 같은 주말에 수지 혼자 가서 그것을 먹을 자신이 없다. 한국에서도 수지는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지 못했다.






이렇게 텟베와 음식코드가 안 맞는 날엔 결국엔 자신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포기하고 베의 음식에 맞춰주는 횟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텟베와 수지가 같이 산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4년을 같이 살았으나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니들은 왜 결혼을 안 하니?"

지난달 오봉야스미(일본의 명절)를 맞아, 한국에 갔을 때 수지의 엄마 한 말이었다.

"꼭 결혼을 해야 하나?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잘 살고 있으면 된 거 아니야 엄마?"

수지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드레스를 입고 웨딩 촬영을 하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은 있다.

남자 쪽에서 먼저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주길 내심 바랬던 적도 있었지만, 텟베와 4년을 살면서 한 번도 결혼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그럼 혼인 신고라도 하지. 왜 안 하니?"

그 물음에 수지는 때가 되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킨 후 대화를 마쳤다.

1978년 가을에 엄마는 나를 혼자 낳았다고 들었다. 나의 엄마는 아빠의 세컨드였다.
텟베와 교제를 하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딸내미 팔자는 엄마 팔자 닮는다더라]라는 말이 자주 생각나곤 한다.
나도 엄마 처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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