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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탕감 뉴스에 쏟아지는 비난들을 보다가

by Daga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묵묵히 빚을 갚아낸 사람들. 그 성실함과 책임감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쉽게 “펑펑 쓰다 저렇게 된 거 아니냐”는 말부터 던진다. 내 나이 쉰, 사회적으로는 한창 일해야 할 나이지만 현실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벽 앞이다. 최근 추가경정예산 소식 중 오래된 소액 채무 탕감 이야기를 들었다. 댓글창에는 “세금 아깝다”, “성실한 사람만 바보 된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 말들이 그대로 가슴에 박힌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흥청망청 살아온 걸까.

젊을 때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공부하고, 어학연수와 토익, 학점 관리까지 해서 대기업에 들어갔다. 14년 동안 회사생활에 매달렸고, 퇴직 후에는 식당 하나 제대로 일궈보려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덮쳤고, 가계는 무너졌다. 경기침체는 이어졌고, 결국 빚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그 빚은 술이나 쇼핑 때문이 아니었다. 한 달 200만 원 남짓으로 네 식구 겨우 끼니 챙기고 아이들 학용품 사는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몸은 망가졌다. 전방십자인대가 끊겨 철심을 뺄 돈도 없었고, 허리디스크는 앉는 것도 힘들어졌다. 공사판에 나가고 싶어도 며칠도 못 버틴다. 서빙조차 나이와 몸 때문에 기회가 막혀 있다. 나라도 나 같은 사람을 쉽게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압류방지통장 같은 제도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경제의 밑바닥을 살리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185만 원 압류방지통장’은 간절하다. 지금까지 신용불량자는 정규 일자리에 나서도 통장이 압류되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현금만 받는 불안정한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효율이다. 하지만 185만 원이라도 보호된다면 다시 정식으로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 구성원으로 설 수 있다. 매달 그 돈이 시장에 풀리면 골목상권도 숨통이 트이고 경기도 살아난다. 미국은 파산법으로, 독일은 ‘두 번째 기회’ 제도로 성실한 실패자에게 다시 설 기회를 준다. 실패했다고 끝이 아니라, 재기가 국가 경제에도 이익이라는 걸 보여준다.

케인즈는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성향이 높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돌아가야 시장이 움직인다. 탈러의 ‘넛지’ 이론처럼, 억지로 밀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주면 사람은 스스로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압류방지통장은 바로 그런 장치다. 강제가 아니라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는 최소한의 틀이다.

물론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채무자는 뜻하지 않은 실패로 무너진 사람들이다. 질병이든 사업이든, 감당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쓰러진 것뿐이다. 그들을 비난해도 바뀌는 건 없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사회다. 압류방지통장은 그 출발점이다.

내 바람은 크지 않다. 몸을 추스르고 가족과 하루 세끼 걱정 없이 지내며, 일하고 세금 내는 평범한 삶이면 된다. “세금 아깝다”는 분들께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다시 일어나 세금을 내면 결국 그게 당신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우리가 무너지면 부담은 사회 전체로 돌아간다. 혐오보다 연대가, 비난보다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한 사람의 재기가 한 가정의 삶을 살리고, 결국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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