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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가 May 21. 2024

마리오네트의 자유

옛날 옛날, 한적한 시골 마을 절벽 가에 신비로운 마차가 하나 있었습니다. 밤이면 마법처럼 극장으로 변하는 이 마차에서는 젊은 예술가 루카스가 혼을 담아 인형극을 선보였죠. 그의 손끝에서 춤추는 마리오네트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였고, 그중에서도 '피오'라는 인형은 특히 아름다웠습니다. 피오는 루카스의 손길에 따라 웃고 울었으며, 때로는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루카스의 인형극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져, 마차 극장은 매일 밤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루카스의 뛰어난 연기와 피오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에 감탄하며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피오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피오는 문득 자신의 나무 손가락을 바라보았습니다. 분명 나무로 만들어진 손가락이었지만, 마치 자신의 손가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피오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피오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오는 기쁨과 감격에 벅차올라 루카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평소처럼 인형극에 몰두하고 있었고, 피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피오는 루카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피오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평소보다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춤을 추었습니다.

그 순간, 루카스는 피오의 춤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꼈습니다. 피오의 움직임은 더 이상 단순한 춤이 아니었습니다. 피오는 자신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카스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휩싸였고, 피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피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피오, 너... 혹시 내 말을 알아듣니?" 피오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루카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피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밤, 루카스와 피오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피오는 자신이 어떻게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루카스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루카스는 피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했고, 피오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루카스는 피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기적이라 생각했지만, 피오의 생각은 루카스의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피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스에게 감사했던 마음은 점차 요구하는 마음으로 변했고, 서운함을 넘어 증오로까지 변질되었습니다. 피오는 텔레파시 능력을 이용해 끊임없이 루카스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춤추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움직이는 거잖아. 꼭두각시 인형처럼!" 루카스가 잠들려고 하면 피오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렸습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 내가 겪는 좌절… 다 너 때문이야!"

피오는 루카스가 느끼는 죄책감을 증폭시켰습니다. 루카스가 공연으로 얻는 기쁨, 성공, 칭찬… 그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그 모든 건 네 덕분이 아니라 나의 고통 덕분이야!"라고 속삭였습니다.

루카스는 피오를 위해 줄을 끊어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오는 "내가 원하는 걸 알지 못해!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날 자유롭게 하는 거야! 네가 날 살아있게 만드는 거라고!"라며 그의 마음을 옥죄었습니다.

피오는 루카스의 꿈에도 나타났습니다. 꿈속에서 피오는 흉측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루카스를 조롱하며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비난했습니다. 루카스는 점점 현실과 꿈의 경계를 잃어갔고, 그의 정신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내가 피오를 조종하고 착취하고 있었던 걸까?" 루카스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관객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마리오네트를 억압하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고, 루카스는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결국 루카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공연 도중, 그는 피오의 줄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손목에도 칼을 그었습니다. "이제 너는 자유야, 피오." 루카스는 피오를 바라보며 슬픈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루카스의 예상과 달리, 피오는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줄은 사라졌지만, 피오는 마치 교통사고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처럼 생각만 할 뿐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왜 나는 움직일 수 없지? 자유는 어디에 있는 거야?" 피오는 절망하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신이시여, 왜 저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주시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주시지 않으셨나요?"

피오의 절규는 극장 안을 가득 채웠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루카스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관객들은 그저 인형극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박수를 보낼 뿐이었습니다.

피오는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텅 빈 극장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의 곁에는 자유를 갈망했던 꿈의 잔해만이 쓸쓸히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오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육체적인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책임지는 데서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오만한 욕망이 스스로를 파멸시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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