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자로 봐도 수영 내공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 수영장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입영에 트러젠(평영 발차기, 자유형 팔 동작)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멋진 수영의 향연에 한동안 멍하니 구경을 한다. 그러다 용기 내어 슬쩍 물어봤다. "혹시 라이프 가드 자격증 있으신가요?" 그랬더니 자격증이 있고 현재는 수영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 후 독심술이 있는 사람 마냥 내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술술 쏟아내 주기 시작한다. 시험 종목과 연습 방법, 필기시험 준비까지. 제 얼굴에 '라이프 가드 따고 싶어요'라고 적혀있기라도 하냐고 도로 묻고 싶어진다. 다정한 오지라퍼가 수영장을 떠난 뒤 가르쳐 준 헤드업 자유형과 트레젠을 연습해 본다. 꽤 긴 거리를 저항이 있는 영법으로 수영하니 수모를 쓴 머리가 뜨끈해져 온다. 뒤이어 잠영을 연습한다. 죽음이 엄습해오는 기분이 든다. 라이프 가드를 취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알려준 대로 연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주인공 해리 포터는 우연히 불의 잔 트리위저드 리그에 참여하게 된다. 트리위저드는 간단하게 말하면 학교 대항 스포츠 대회 같은 것이다. 이 리그 중 수중에서 열리는 두 번째 시합을 위해 해리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해리는 '아가미 풀'이라는 단어 그대로 아가미가 돋게 만들어 주는 풀을 알게 되고, 그 식물이 있는 스네이프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것을 훔치게 된다. 훔친 아가미 풀을 먹은 해리의 양쪽 귀 뒷면에는 아가미가 생겨나고 손과 발에는 물갈퀴가 생겨나면서 해리는 두 번째 경기를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된다. 25m를 잠영해 나가던 나는 문득 해리처럼 아가미풀을 훔치고 싶어졌다.
가끔은 나도 모르는 내 욕망을 누군가 대신해서 알려줄 때가 있다. 이것은 갑자기 어떤 개시가 내려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날이 마치 그런 날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숨이 깔딱 넘어갈 때까지 온갖 시험 종목을 연습하고 있는 나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너 하나나 구하고 살면 천만다행이다, 요것아.' 하는 자기 검열이 불쑥 솟아오른다. "그래도 내 가족 정도는 구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해 본다. 내 안의 유교걸의 의견을 말살 시킨 채로 일단 연습한다. 잘은 몰라도, 유심히 지켜본 바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러다 보면 불혹엔 가족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단은 세상 어디에 있을지 모를 아가미 풀부터 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