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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립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by 도시골사람 Dec 08. 2024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밤과 밤사이에 저는 서서히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잃어갑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떠올리면, 그것이 하나같이 너무나 하잘것없다 느껴져 다소간 쓰게 웃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없다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흘러나오는 따스한 숨과 때가 되면 찾아오는 허기에 어쩐지 눈앞의 삶이 아득해집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파도가 저 멀리 엄습해오는 것을 지켜봅니다. 우리 모두가 어쩌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것일까. 한없이 침잠해가는 마음에 이번 주말이 되면 어떤 답이든 나올 것이라 스스로에게 불안의 상한선을 쥐여주었습니다. 그 답이 석연치 않다 하더라도 마음이 달아나지 않도록, 마음이 견딜 수 있도록 인간이 만들어 낸 무수한 아름다움을 상기하려 애썼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아온 마음의 조각이 후안무치의 얼굴로 본 회의장을 나서는 106명의 손에 실려 흩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쳐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던 야당 의원들은 그 이름자들을 하나하나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지켜가고 있는 국회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그 이름들을 재창합니다. 하나씩 불러가는 그 이름들을 TV 속 화면으로 듣게 된 저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130년 전 동학농민 운동으로부터 이어져 온 주인 됨을 찾기 위한 외침들이 3.1 운동, 3.15 의거, 4.19혁명, 부마 항쟁,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거쳐 국민들의 두 손에 작은 촛불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이 '한밤중에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라 말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 사건의 전말들은 더 이상의 경악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참담합니다. 과연 그들이 치밀하지 못했기에, 어설펐기에, 그 차가운 밤에 동원된 누군가의 귀한 피붙이들이 어리숙했기에 이 일이 실패로 돌아간 것일까요? 아니요.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10여 년 전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전을 지켜본 바가 있습니다. 정교하게 짜인 작전을 완수해 내던 정의와 명예로 반짝이던 그 영광된 눈빛들을요. 저는 우리 속에 130년을 거쳐 이어져 온 주인 됨의 숭고함이 무장된 이들로 하여금 머뭇거리고, 망설이게 하여 마침에 전열을 흩어지게 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아마 끝내 믿지 않으려 들것입니다. 그들의 셈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니까요. 저는 뻔뻔스럽도록 극악무도한 인간의 모습과 그 이름들을 재창하는 두 손에 든 파리한 불씨들이 넘실거리는 광경을 동시에 바라봅니다. 이토록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모습의 인간 군상을 보면서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 중 누구든 붙잡고 성토하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주인이며, 뜨거운 것이 흐르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고. 그러므로 어제처럼 촛불을 든 가련한 손들이 짓이겨지는 일이 다시금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손들의 주인 됨을 짓밟을 수는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부끄럽게도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과거에 새겨진 몇 장에 불과한 글들이 한낱 종이에 쓰여진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 글들은 그들의 정신과 시대에 아로새겨졌습니다. 표현하세요. 마음껏 표현하세요. 생각이 흩어지지 않게, 고심하여. 그들이 밤사이 도둑질하려던 그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그들이 바닥 없이 저열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높은 이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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