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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골사람 Nov 19. 2024

17) 미망의 시간들




  수영의 여러 영법 중 다른 양상을 띠는 한 영법이 있다. 바로 배영이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어 놓고 헤엄치는 배영 중에서도 나는 배영을 시작할 때의 물속 동작을 즐긴다. 끝없이 찾아오는 일상의 지루함처럼 바닥에 흘러가는 타일의 수를 헤아릴 때가 잦은 다른 영법과 달리, 발로 벽을 차고 나가 수면의 반짝임을 지켜보며 흘러가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흔히 볼 수 있는 물 밖에서 지켜보는 수면과 달리 물속에서 지켜보는 수면은 그 반짝임 위에 나를 비춰준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는 나르시스처럼, 오늘도 물을 가르고 있는 스스로에게 조금은 도취되는 마음으로 표면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배영의 물속 출발 자세는 바사로킥이라 불리는 발차기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접영킥의 기본인 돌핀킥을 역으로 하는 자세로 시합에서는 15m 구간까지만 허용된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물속에서 출발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꼈던 반면, 지금은 가능한 한 멀리, 오래 바사로킥을 차며 나아간다. 나는 물속에서 물의 표면을 보며 앞으로 나가는 이 동작이 좋아서 15m까지만 허용되는 이  찰나에 아쉬움을 느낀다. 처음 이 킥을 연습하기 시작했을 때 수중을 가르고 나아가야 할 몸이 자꾸만 떠오르는 문제점이 있었다. 유선형을 이룬 몸의 경사를 완만하게 조율하며 물속을 헤엄치기를 반복하면서 몸이 바쁘게 떠오르는 것을 유예하기를 수없이 연습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연습하던 어느 날, '된다. 이거다.' 하는 감각이 몸을 타고 들어왔다. 예외 없이 몇 번 더 반복해 연습하려는 마음과 오늘은 그만하자는 마음이 상충한다. 나약한 나는 일고의 여지없이 몸이 편한 방향으로 깃대를 옮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다시 같은 동작을 연습하면서 전 날의 감각을 되돌려보려 애써보지만, 애석하게도 그 감각은 온데간데없다. 다시 그 감각을 찾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으리라. 


  일상에서 이런 순간은 예상보다 높은 빈도로 찾아온다. 섬광 같은 반짝임이 떠오르는 것만 같은 순간들. 그러나 언제나처럼 그 일상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착종되어 있다. 온갖 소음과 유희와 소비의 부스러기들로 미망되는 감각을 뒤늦게 잡아보려 애쓰지만 그것은 이미 내 살갗을 벗어난 것이 되고 만다. 일도창해(一到滄海)해버린 감각을 되돌리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행위를 하며 감각을 반추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순간의 갈무리를 깨어있기를 통한 삶의 보다 높은 구체화라 설명한다. 나는 이 '깨어있다'라는 우리말이 뜻하는 상태를  깨어나 있는 상태인 'awake'와 산산조각이 나듯 부서지는 'break'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고 여긴다. 자본주의의 먼지와 대중의 감정에 압도되지 않은 채 내 몸이 가진 감각과 감정을 세밀하게 느끼는 깨어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서 지니는 편향된 잣대를 냉철하게 부수어 낼 수 있는 것이 벤야민이 말한 '깨어있는' 의식이다. 그런 의미를 염두에 둔 채 바라본 세상은 말 그대로 무의식의 소산들로 넘쳐난다. 아집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거대한 무덤과 같은 사회. 권위에 기대어 작고 보잘것없는 목소리를 지운 대가로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훈장들이 남았다. 그 속에 무의식의 눈만을 뜬 채로 유령처럼 배회하는 사람들과. 언제나처럼 거침없이 흔들리는 세계를 지켜본다. 긴 시간 속에 위로하듯 존재했던 표상들은 요즘 들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천박하다는 단어에 걸맞은 시류를 앞에 둔 우리는 이제 그만 깨어나야 한다. 그간 빼꼼히 열어두었던 무의식의 창으로 흘러들어온 세상의 부스러기만으로 살아왔던 삶을 소급해서, 더욱 치열하게 깨어나야 한다. 희미하게라도 깨어남을 반복하다 보면 명확한 태를 가진 감각이 몸을 관통하며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무엇을 체득해 본 경험들로 말미암아 희망 삼으며. 마치 내가 수영을 하며 느낀 '된다. 이거다.'하는 느낌처럼. 삶의 껍데기만 움켜진 채 그럴싸한 관에 눕혀지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면, 매 순간의 건너뜀 뒤에 자조적인 소비로 나의 현존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활을 장식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엉성한 갈퀴로라도 생각을 갈무리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희구하자. 저속으로 늙기를 희망하는 세상처럼, 쪼개어진 세밀한 감각으로 꾸며진 시간들은 느린 속도로 타래지어져 내 감각 속에 남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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