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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도르식 사과

by 도시골사람




간만에 식구들이 모여앉았다. 몇 달여 만에 가족 모두 함께 한자리였기에 저마다의 이유로 조금씩 흥분한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오가고 모두가 북적거리는 그 시간들이 이어지면 좋으련만, 조금의 예외도 없이 친정 부모님의 안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늘 자그맣게 서로를 치고받는 동갑내기 부부인 친정 부모님은 그날따라 유독 집요했다. 그렇게 한 대씩 치고받는 강도가 높아지는 와중에 엄마의 한 마디가 불쑥 솟는다.


"옛날에 악을 쓰고 우는 너(나)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서......"


"그만해라!"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제지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 능숙하지 못하게 자리를 떠나시는 모습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영을 남긴다. 그러고서는 대충 자리를 수습했던 것 같은데 이후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 하루를 마무리하며 손을 닦고 자리에 누워 가만히 어둠을 응시했다. '옥상에서 날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걸까', '엄마의 생략된 말 뒤에는 어떤 서술어가 따라왔을까.'라는 질문은 필요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게 되었으므로. 엄마의 그 말에 발작과 같은 반응을 하던 아버지를 보면서 잘 가려둔 의식의 벽을 뚫고 다가온 장면이 하나 있다. 큰 아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 알 수 없는 이유로 목 놓아 우는 아이를 뒷좌석에 태운 채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생각했다. '아이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나도 바다에 던져 저서 죽어버리고 싶다.' 그 갈망은 너무나 강렬했고, 그 강렬함 만큼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나를 괴롭게 한다. 내가 자식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으므로 나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인간이라는 큰 영역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한 사람쯤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으므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지옥 같은 마음을 적어도 내 속에서만큼은 당신에게 원죄로 뒤집어 씌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오랜 악몽 속에서 배회하던 날들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담아 마음의 저 한구석에 이 사건을 밀어 넣어 뒀다. 그런 후에는 잘 잊어버리는 것만이 요구되었다. 망각을 삶의 기조로 삼은 사람처럼 하루하루 살아갔다.



밤 9시. 온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작은 두 개의 우주들이 조용히 다른 차원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방안 가득 일정하고 고른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조용히 방 밖으로 몸을 물린 후 거실 한편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앉는다. 가볍게 목과 팔을 돌리며 시작한 요가는 자각한 한계를 조금씩 넘나들며 길게 숨을 내뱉는 시간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바 아사나, 송장자세를 하며 숨에 집중한다. 오늘도 까무룩 졸았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다행히 완연한 잠에 빠져들기 전까지 밀린 책을 읽을 시간이 남았다. 요가 매트를 돌돌 말아 정리하려 일어나다가 벽에 붙은 세계지도를 본다. 눈에 익은 이 지도는 왼쪽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른쪽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커다란 태평양이 가운데를 차지한 메르카도르식(式) 지도다. 메르카도르식 지도는 1569년 네덜란드 지도학자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라는에 의해 고안된 방식의 지도이다. 이 지도는 지구라는 구를 원통형 종이로 감싸는 방식으로 투영시켜 평면 위에 지형을 그려냈다. 이 도법을 사용한 지도는 경도와 위도를 보여주는 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두 지점 간의 각도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정각도법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도법의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수두룩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왜곡의 정도가 크다는 것이다. 구모양의 입체를 평면으로 펼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왜곡 때문에 적도에서 가까울수록 실제 크기보다 작고,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실제 크기보다 훨씬 커진다. 한 예로 메르카도르 지도 상에서는 그린란드와 아프리카 대륙의 크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이 그린란드보다 14배 크다. 1.4배 정도는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지만 14배라면 말이 달라진다. 실제 그린란드의 면적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알제리보다 작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도 상에서 러시아가 남아메리카 대륙보다 3~4배는 족히 커 보이지만 실제로 남아메리카 대륙이 약간 더 크며 지도상의 러시아가 아프리카 대륙보다 약간 더 커 보이지만 실제는 러시아에 비해 아프리카 대륙이 2배가량 크다. 또한 남극은 극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대륙을 합친 것보다 커진다. 이 정도면 사실상 '왜곡'이 아니라 왜곡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구를 평면으로 투영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라기엔 어딘지 공교로운 구석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 낯선 도서관의 작은 회의실에 회원들이 마주 앉았다. 각자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나 입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여태 큰일 없이 살아서 인생에 한 번은 찾아온다는 큰일이 두려울 때가 많아요. 태중에서 죽을 뻔했던 고비를 넘기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대신해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무언가 사명 같은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벼워져요."



정확한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이런 의미로 말을 한 것 같다. '여태 큰일 없이 살았다'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정말로 큰일 없이 살았니? 그날 이후 마음속을 부유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내게 평탄하게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14배나 작은 그린란드를 아프리카 대륙만큼이나 커다랗게 그려놓은 것처럼 무언가를 내 속에서 왜곡시키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같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정말로 내가 겪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나는 그 상황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악몽 속에 가두려 하는 것일까. 사람은 자신의 의견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을 더한다. 그래서 어떤 사건을 목격한 일로 큰 신뢰를 얻는 지위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메르카도르식으로 그려진 지도를 보며 생각에 빠진다. 망막에 맺힌 빛이 전기신호로 바뀌고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그 과정에서 무의식의 인식에 의한 왜곡이 없다 과연 말할 수 있는가. 적도와 가까운 따듯한 나라의 사람을 비교적 선선한 나라의 사람보다 작은 존재로 여기고 있지 않았던가. 경제적인 잠재력을 가진 미국령의 그린란드를 아프리카 대륙보다 14배 크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라 러시아를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비해 크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실제로 그린란드에 비해 14배나 큰 아프리카를 투영된 왜곡을 통해 비슷한 크기로 그려 넣듯, 나는 나의 악몽을 의식이 닿지 않는 곳에 줄이고 줄여서 방치해둔 것은 아니었을까. 단단하지 못 한마음에 생긴 미세한 금을 따라 의식이 흐른다. 불어난 생각이 한두 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닦다 말고 망연해져버려 바닥에 주저앉는다. 무릎을 적시기 시작한 의식에 갇힌 나는 통풍도 되지 않던 구석으로 달려가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상자를 가져 나온다. 넘쳐흐른 생각과 눈물들로 상자 속에 든 악몽을 가능한 한 깨끗하게 씻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쉽지 않다. 의식의 물기가 마르지 않은 채 흉물스럽게 빛바랜 그 기억을 바라본다. 오랜 시간 망설이다 매일같이 눈이 닿는 곳에 올려둔다. 조금의 왜곡도 없이 바로 보일 때까지 매일, 조금씩, 제대로 바라보기로 다짐한다. 삽시간에 도굴되듯 파헤쳐진 기억을 더 이상은 그냥 안고 살아갈 수도, 그렇다고 언젠가 다시 파헤쳐 질 이 흉물스러운 기억을 내가 그랬으니 너도 어디 한구석에 처박아 놓으라 아이에게 말할 수는 없으므로. 일그러지고 빛바랜 흉물을 보며 '이게 나야.'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다행히 왜곡이 심한 이 지도에는 한 가지 큰 장점이 있다. 두 지점을 잇는 각도만큼은 정확하다는 것이다. 왜곡으로 일그러진 마음을 가졌지만 오차와 핑계가 없는 정확한 사과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렇게 너에게 제대로 된 각도로 전해질 사과를 오랜 시간 준비하기로 한다. 자기 연민과 변명이 없는 진실한 사과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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