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는 퇴직은 고통일 뿐이다.
혹시 직장생활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직장인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체는 바로 직장인 자신이니까요.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려 합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직장인은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퇴직은 죽음과 같이, 직장인이라면 100% 마주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보험이나 자산 관리 등으로 사후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똑같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인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는 준비하면서, 정작 자신과 가족의 미래가 달린 퇴직은 준비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어떻게든 정년만 채우면 연금으로 먹고살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할 뿐입니다.
퇴직은 비자발적 퇴직과 자발적 퇴직으로 나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퇴직'이라 하면 비자발적 퇴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조조정, 인력 감축 등 여러 사유로 원치 않는 퇴사가 이루어지죠.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일하고 싶어도 정년 때문에 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자발적 퇴직이 아닌 비자발적 퇴사입니다.
반대로 자발적 퇴사는 무엇일까요? 쉬운 예로 이직을 들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기회를 위해 퇴사하는 경우, 우리는 그것을 자발적인 퇴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직한 회사에서의 퇴사가 어떻게 될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요. 자신의 사업을 위해 퇴사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거창한 사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퇴사 모두가 자발적 퇴사에 속합니다.
때로는 비자발적 퇴사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퇴사 이후를 준비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퇴직한 김에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해보자'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준비만 하고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비자발적 퇴사냐 자발적 퇴사냐의 차이는 '퇴사 이후를 준비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퇴사를 미리 준비한 사람만이 자발적 퇴사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준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 주변만 봐도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비자발적인 상황에 밀려 이직하는 사람은 있어도, 자신이 주도하는 이직이나 오랫동안 준비한 일을 위해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적어도 제 주위에는 그렇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회사에서 지시하는 일을 처리하며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는 최근, 몇 년 만에 대학교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모두 중년이 된 친구들이었죠. 하나같이 어떻게든 회사에 더 오래 다녀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더라도 퇴직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었죠. 아이들 학비, 주택 대출금, 당장의 생활비, 부모님 병원비 등 이유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들이 틀린 말도 아닙니다. 솔직히 저 자신이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왜 나만 자발적인 퇴사를 준비하고 있지?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난다고 해서, 퇴직하지 못할 이유가 과연 줄어들까?' 10년 뒤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이유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퇴직을 준비해야 할 텐데, 왜 내 친구들은 안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속사정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저 "맞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지"라며 동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퇴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정규직이라면 웬만해서는 해고가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규직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퇴사를 강요당하거나,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비자발적인 퇴사를 하게 될 경우는 무수히 많습니다.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한번 상상해 보세요.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오늘 당장 퇴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입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지 않으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퇴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10년 뒤에도 같은 질문 앞에서 또다시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퇴직을 준비해야 합니다. 정년까지 일하는 것이 목표라 해도, 그 중간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원치 않게 퇴사해야 할 때를 대비하셔야 합니다. 운 좋게 정년까지 일하게 된다면,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정년 이후에 마음껏 펼치면 되니까요.
퇴직을 준비하라는 말이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도 훌륭한 본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 내몰리지는 말자는 의미입니다. 저의 경우는 정년을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목표한 바를 이루면 자발적으로 퇴사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꽤 오랫동안 퇴사를 준비하고 있죠. 물론 제 준비가 계획보다 늦어져 회사를 더 오래 다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회사에서 지금 당장 저에게 '나가'라고 말해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제가 목표했던 완벽한 준비는 아닐지라도, 언제든 새로운 시작을 할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요. 결국 이제 제게 '비자발적 퇴사'란, 제 의지든 타의에 의해서든,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겁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분이 이 편안함을 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편안함을 알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준비만 확실하다면 회사 생활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감이 생기죠. 물론 준비가 되었다고 해서 회사 업무를 소홀히 하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더 충실해야 합니다. 당신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회사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테니까요. 그리고 회사에서 더 열심히, 더 잘 해낸다면 당신의 준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퇴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따라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퇴직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물론 연차나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준비 방법은 다르겠지요. 하지만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5년, 10년 뒤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니는 직장에서 사장까지 되겠다고 목표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확률은 당신이 창업하여 성공할 확률보다도 낮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길에 도전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정말 멋진 일이니까요. 다만, 오너가 되지 못했을 때를 위한 준비도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목표를 가진 분은 소수이기에 일반적인 경우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비자발적인 퇴사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그 '대부분'이 되지 마십시오. 퇴직을 준비하는 '소수'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당신의 미래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