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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버리는 4시간? 내 인생을 바꿀 4시간!

by 고인물

저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입니다.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 걸리죠. 이런 생활을 한 지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당시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퇴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4시간의 출퇴근을 감수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죠. 4년이나 다녔으면 이제 적응된 것 아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건 '적응'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4년 동안 제 일과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05:00 : 기상

05:00 ~ 05:50 : 출근 준비

06:00 ~ 08:00 : 버스, 지하철로 출근

08:00 ~ 17:00 : 근무

17:00 ~ 19:00 : 지하철, 버스로 퇴근

19:00 ~ 20:00 : 저녁 식사

20:00 ~ 21:00 : 운동 or 블로그 or 글쓰기

21:00 ~ 22:00 : 샤워, 다이어리 정리

22:00 : 취침


초반과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꼬박 4년을 거의 이런 루틴으로 보냈습니다. 너무 일찍 잔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늦게 잤었는데, 하루 이틀만 수면이 부족해도 다음 날 너무 피곤하더군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저녁 10시가 되면 가능하면 침대에 눕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일단 눕습니다. 그래야만 내일을, 그리고 모레를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장거리 출퇴근 초반에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와 2~3시간만 자고 출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 이후로는 회식을 해도 저녁 7~8시면 집으로 향합니다. 다시는 그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장거리 출퇴근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을 잘만 활용하면 의외로 삶이 더 건전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퇴근 후 술자리는 거의 만들지 않고, 만들어도 일찍 귀가하게 되죠. 처음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그냥 쉬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쉰다고 해서 체력이 회복되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틈틈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해 주는 것이 체력 관리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간'입니다. 하루 4시간이라는 아까운 시간이 길바닥에 버려지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피로 때문에 출근길 지하철에서 병든 닭처럼 목이 꺾이며 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4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버스를 탈 때는 생각을 정리하고, 지하철을 타면 책을 읽습니다.


출퇴근 4시간은 힘들지만, 덕분에 제 생활은 꽤 건전하게 바뀌었습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운동과 독서를 하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도 갖게 되었죠. 좋게 변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내 수명을 깎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피곤함은 늘 남아있고, 어느 날 갑자기 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날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어야 합니다. 운동, 독서 같은 건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쉬어야죠. 이것이 4년 정도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느낀 제 일상입니다.

힘들지 않다거나, 해볼 만하다고는 절대로 말 못 하겠습니다. 저처럼 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는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이 되도록 자기관리와 시간관리를 잘 하라고 조언할 수 있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무언가라도 얻으려고 하는 것이지, 꼭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장거리 출퇴근은 제 인생에 아주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변화의 원인은 바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었죠.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활을 몇 년이나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피할 수 없겠더군요. 근무지는 바뀔 수 있지만, 결국 장거리 출퇴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변화하더라도 숙소 생활로 바뀌는 것뿐이겠죠. 출퇴근 시간은 줄겠지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숙소 생활을 몇 년간 하는 게 과연 괜찮을까요? 물론 주말부부를 선호하는 분들도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저는 가족과 함께 있으려고 돈을 버는 건데 가족과 떨어지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 싶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4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제게 갈 길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준비를 한 지 2년이 넘어갑니다. 이제는 그 준비의 성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네요. 출퇴근 4시간이 제 인생의 궤도를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때 그냥 힘들고 피곤하다며 집에서 잠만 자거나 불평하며 술만 마셨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런 상상이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하고, 독서하고, 술을 줄이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한 길이죠. 하지만 그때 제 마음은 단 하나,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때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좋게 변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이 출퇴근 시간이 그랬고요. 지금 자신에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어쩌면 저처럼 인생의 궤도를 바꿔줄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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