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로망의 그 어디엔가 2
-나의 "윗목"이 남긴 발자국-
코로나로 인해 못 모인 지 몇 년 되었지만, 대학 동기 6명이 매년 연말에 가족동반으로 송년회를 했었다. 대학 졸업하는 해부터 매년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가족끼리도 친해진 덕분이다. 몇 해 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자녀를 미래에 아르바이트를 시킬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각자 경험과 생각을 나누던 중, 나는 그 시기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의 병행이 정말 버거웠어서 자녀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얼큰하게 취한 동기 한 명이 가만히 듣더니 "그래, 넌 이제 드라마 그만 써라. 내가 너의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그래. 행복하게 살아, 자식아~!"라고 특유의 말투로 묵직하게 던진 후 웃었다. 그 동기 역시 그 시절 '청년의 윗목'을 겪으며 늘 버겁게 돌아가는 삶을 살았었기에, 비슷하게 돌아가는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취해 울고 웃었던 터였다. 맞다, 그 당시의 내 삶은 드라마였다. 청춘 드라마처럼 사랑도 열정도 고난도 어둠도 극단적으로 공존했었다.
대학생활 내내 그 집에 지냈음은 경제적 형편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빠의 말기 암투병은 그 집 3년 차에 시작되었다. 금상첨화 아닌 병상첨병. 그랬기에 나의 대학생활은 늘 등록금에 대한 압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었다. 그럼에도 학업을 다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던 엄마,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던 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지 1년 차,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래도 집 다운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새벽마다 자다 깨서 시린 코를 어루만지며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스물아홉 살에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돈을 벌게 된 지 4년은 지났던 터라 처절했던 나의 '윗목'시기를 모른다. 굳이 떠올리는 것이 유쾌하지 않기에 나도 엄마도 동생 역시, 그 누구도 그 집에서 살던 시기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냥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정도로 하고 마무리. 모두의 대화 속에서 사라진 그 5년이기에 남편과 내 사이에는 대학시절의 추억 부분만 공유되어 있다. 언제나 부모님의 절대적인 희생과 지지로 이어진 나의 삶이었기에, 그 시절을 제외하고 들으면 나의 과거는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이다. 내가 마냥 밝고, 철없는 이미지로 보이는 것이 전혀 불만스럽지 않다. 오히려 내가 지녔던 처절한 가난과 어두운 내면을 들키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얼마 전 한 잔을 걸치고 퇴근한 남편이 나에게 "자기는 결핍이 없어?"라고 물었다. 세상에, 지금 나의 삶에 결핍이라니. 내가 그 5년을 너무 잘 숨겼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오히려 그에게 "자기는 뭐가 결핍되었다고 느끼는데?"라고 물으니 "돈?"하고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어디선가 잘 나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퇴근했구나 싶었다. 그날 밤 나의 결핍은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보았는데, 조금 더 view가 좋은 집, 주름 없는 이마? 그 정도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 결론을 내렸다. 혹독한 결핍의 시간을 지내온 나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내 삶은 '감사' 자체이다.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너무 없는 삶을 살아보니 결핍에 대한 기준점이 매우 낮아졌다고 해야 하나.
원하는 것들을 모두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내게 '결핍'이 아니라 '로망'이기 때문이다. '내 집 거실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강과 남산타워를 지켜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는 바람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겠지만, 현재 내가 처한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라기 보단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내 삶의 목표나 성취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내 삶의 '로망'정도로 두어도 되지 않을까? 로망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금전적이지만...
'로망(Roman)'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찾아보니 프랑스에서, 다시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로 우리말로는 '낭만'으로 통용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럼 '낭만'은? 사전에서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라고 한다. 답을 찾은 느낌이다. 살아가면서 분명 점점 더 원하고, 올라가고, 또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이를 취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핍'으로 느끼기보다는, 나만의 로망 혹은 낭만으로 정해두려 한다. 나의 '윗목'이 내게 남긴 아프지만 귀한 발자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