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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pr 05. 2022

라일락의 계절

-너의 의미-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꽃이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왜 돈을 주고 곧 시들어버릴 것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0대의 어느 날 100송이 장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마음은 참 고마웠으나 집에 들고 가는 길에 내내 창피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었다면 부러움이었을지 시기심이었을지 모를 그 눈길을 충분히 즐겼을 텐데.


그래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꽃은 딱 하나 있었는데, 라일락이다. 은은한 색과 단순하고 작은 형태, 그럼에도 진하게 뿜어내는 향기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 현관 앞에 큰 라일락 나무가 있었는데, 가지마다 흐드러지듯 꽃이 한가득한 모습이 마치 그 자체로 커다란 꽃다발 같았다. 그 나무를 주방 유리창 앞에 두고 볼 수 있는 1층 집 사람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나중에 라일락이 가득 핀 야외정원에서 결혼할 것이라고 꽤 클 때까지 여기저기 이야기했었다.


20대의 어느 일요일 오후, 인생의 또 험난한 고개를 만난 시기에 언제라도 누구라도 툭 건드리면 울듯한 마음으로 교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었기에 걷고 있었을 뿐, 마음이 너무 지쳐서 영혼 없이 몸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밀려오는 향기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향기가 나를 향해 퍼붓듯이 쏟아지는 느낌이었기에 자연스레 위를 올려보았는데, 높고 붉은 벽돌 담장 위에 라일락 나무 가지들이 담 밖으로 뻗어있었고, 라일락의 흰 꽃무리의 향기가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아, 이것이 지금 나를 향한 신의 위로구나, 적어도 오늘만큼은 울지 말자.'고 다짐하며 눈물을 삼키고 걸었다.


인생의 여러 고개를 넘고 넘어 서른이 되었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은 매우 감성적인 분이셨는데, 그에 못지않은 예민함도 지니고 계셨기에 내게 마냥 편한 분은 아니셨다. 처음 인사드리던 날, 웃고 계셨지만 특유의 꼿꼿한 기질은 숨기지 못하셨는데 몇 시간의 대화 끝에 나의 전공이 '국어국문학'임을 들으시고는 분위기가 급 반전되었다. '공대생' 그 자체인 당신의 아들이 함께하겠다는 여자는 '이과'일 것이라 생각하셨던 모양인데, 당신과 비슷한 계열임을 들으시고는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의 감성 가득한 과제들이 부여되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 10개'를 적어서 보내야 하기도 했고, '당신과 함께하는 가족이 되면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도 적어내야 했다.


아버님의 감성은 며느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졌다. 결혼식을 앞두고 서울행 기차를 타시기 전에 들에 핀 국화가 너무 예쁘다고 한아름 따다 안겨주시기도 했고, 지방의 유명 빵집에 가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실 크림치즈빵을 줄을 서서 가득 사다 안겨주시기도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그 국화가 신혼집 거실에 노오란 꽃가루를 한가득 흩뿌려 두고 시들었고, 나는 크림치즈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아버님께는 모두 비밀로 했었다.) 그중에 제일은 내가 라일락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마당 입구에 라일락 나무를 심으신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고 엄청 감동했었지만, 막상 내가 시댁에 내려갔을 때는 라일락이 핀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당의 여느 나무와 다름없는 의미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결혼한 지 6년째 되던 해 4월, 아버님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이별이었기에 아무도 떠나시는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고, 경황없이 장례를 치렀다. 삼일장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시댁으로 들어섰는데, 어디선가 진하게 풍겨오는 라일락의 향기. 아버님이 심어 두신 라일락 나무가 만개하여 진한 향을 보내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라일락이 필 때마다 코를 파묻고 향을 맡고는 했는데, 그 나무는 부러 가까이하지 않아도 바람에 풍성하게 향을 담아 보냈고, 내게서는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 꽃이 이렇게 필 때마다 우리를, 그리고 나를 이곳에서 기다리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마음이 아파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그 나무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신의 응원과 위로이기도 했던 라일락은 아버님의 기다림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봄이 되면 다들 벚꽃을 기다리는데, 나는 그 후에 여기저기에서 피어날 라일락을 기다린다. 노는 일에는 절대 빠질 수 없기에 나 역시 벚꽃, 그리고 그 기다림이 주는 봄의 설렘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흐드러진 봄 풍경을 통해 곧 찾아오겠다고 보내는 라일락의 신호가 내게는 더 크게, 기쁘게 느껴진다.


신호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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