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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턴 공사 두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10> 9월 30일


아침에 한국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호스피스에 계시는 고모가 오늘 호흡기를 착용하셨다고 한다. 동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신 아빠는 아침부터 눈가가 촉촉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가 전혀 없다. 그저 아빠께 죄송한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고모께서 고통 없이 주무시듯 하나님 곁으로 가시기를 모두 함께 기도하고 있다. 고모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서 인지 아빠는 더 많이 웃으시고 더 고되게 일에 몰두하시는 것 같다. 아빠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화장실 수리



부엌 타일 뜯어내기

신랑과 나는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건만 아빠는 일찌감치 망치와 징을 들고 화장실과 부엌 타일을 때 내는 일에 집중하셨다. 타일이 떨어지면서 벽에 구멍이 생기기도 했지만, 무서운 집중력으로 이 많은 타일을 하나하나 망치로 두드려 벽과 분리해 내셨다. '먼지가 많이 날 텐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만 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른 작업을 위해 세 부분으로 분리하였다. 아빠는 타일작업, 신랑은 천정 마감 작업, 그리도 난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한 개의 방화문과 나머지 문들의 페인트작업을 맡았다.

결과적으로 아빠의 타일제거 작업은 성공!

신랑의 천정 고르기 작업은 실패!

나의 페인트 작업은 아마도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래 천정은 팝콘실링이라고 부르는 모습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천정을 새로 페인트 하기 위해서는 팝콘처럼 튀어나온 부분들 매끈하게 갈아내어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존과 일꾼들은 대충 긁어내다가 힘이 들었는지 아주 꼴사납게 엉망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여러 유튜브와 인테리어 업자들에게서 수집한 정보로는 식초와 따뜻한 물을 섞어서 뿌려두면 페인트와 그 속에 남아있는 팝콘실링이 모두 흘러내려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서도 깨끗하게 평평한 천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진짜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역시나 우리의 현실은 페인트가 흘러내리기는커녕, 천정이 뿌렸던 식초와 물을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으로 뱉어 내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천정을 긁어내고 수성페인트가 아닌 유성 페인트로 마감을 한 것 같다. 집을 고쳐달라고 돈을 줬더니 집을 부수어달라고 돈울 준 격이 되어버렸다. 집안에 가득 찬 먼지와 식초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Jone Rail!!!!!

성이 레일이고 이름이 죤인 당신,

그래! 너! 잘 먹고, 잘 살아라!


천정 작업


일단 천정 작업은 후퇴다. 더 고민해 보고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오늘 마무리 작업은 타일을 뜯어낸 벽에 새로운 타일을 붙이기 위해 밑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손이 꼼꼼한 두 분이 계셔서 비록 빠르지는 않지만 모든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다.


이제 이곳에 예쁜 타일만 붙이면 제법 그럴듯한 부엌과 화장실의 모습이 나올 것 같다. 비록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어서 모든 작업이 투박하지만 신랑과 아빠를 믿는다. 지금 나에게 이 두 분은 슈퍼히어로다.




가을바람이 깊어지고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다음 주면 이 예쁜 단풍들도 모두 떨어질 것 같다. 다음에 에드먼튼에 방문했을 때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것 같아 부랴부랴 사진기에 아빠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집 문을 통과할 때마다 해가 있을 때는 흰색, 해가 없을 때는 보라색으로 비치는 대문이 참 마음에 든다.


아키아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에슨 시골집으로 향했다. 모두에게는 롱위캔이었던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휴일이 우리에게는 노동절이었다. 그래도 시작이 좋다. 다음 주에는 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걱정은 접어두고 감사와 기대감만 놓아두기로 했다. 우리에겐 가족이 있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랑은 딸과 함께, 난 아빠와 함께 운전을 교대해 가며 이동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크루즈 기능을 아빠께 가르쳐 드렸다. 캐나다 특히 알버타 처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자동차의 크루즈 기능은 꼭 알아 둬야 할 기능이다.

나보다 더 많은 핸드폰 기능을 알고 계신 아빠.

나보다 더 많이 AI를 삶 속에 적용하시는 아빠.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즐기시는 아빠.

이런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물론 아빠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에겐 자랑스러운 분이시다. 그런 아빠게 나도 가르쳐 드릴 게 있다니!

어깨가 으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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