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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트 공사 여섯 번째 날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 21> 10월 11일


오늘은 금요일이다. 에드먼튼 공사 여섯째 날이다. 캐나다 최고의 명절 중 하나인 땡스기빙데이가 있는 롱위캔이기도 하다. 덕분에 우리는 이번 주에 5일 연속 에드먼튼에 머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공사가 완전하게 마무리된다면 11월에는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집보험도 무사히 가입할 수 있을까? 세입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집보험리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공사걱정, 세입자 걱정, 집보험 걱정.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지만 일단 지금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될 것을 믿으며 오늘의 일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아침기온이 영하 3도 라더니 잔디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빠가 여기 계시는 동안 눈을 치우시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겨울준비는 되어있나? 내 기억에 아빠가 한국에서 가져오신 여행가방 속에는 아빠의 짐보다 아이들에게 줄 먹을 것들과 나를 위한 건강식품으로 가득 찼었다. 겨울바지도, 윗도리도 심지어 잠바도 준비해 오시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겨울 쇼핑을 해야겠다.

늦가을 에슨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었더니 남자들도 짐을 싸느라 또다시 집이 분주해졌다. 늦어도 점심시간 전에 에드먼튼에 입성해야 한다. 그래야 해가 떠있는 한 시간이라도 더 공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가 열심히 공구를 챙겨 차에 옮기시는 동안 신랑은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하더니 급기야는 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매사 너무 바쁜 아빠와 극도로 느린 신랑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게 쉽지가 않다. 지금 이 순간 웃어야 하나? 화를 내야 하나?

출발할 시간이 되자 신랑이 천진난만하게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 내 짐은? 당신이 가져오나?"

세상에, 자기 짐도 아직까지 챙기지 않은 것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상도와, 벼락이 떨어져도 뛰지 않을 충정도와의 동거생활이다. 두 남자들의 팀 이름. "장인어른과 배짱이" 정말 딱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한 신랑이 이번에 제대로 장인어른께 어리광을 부릴 계획인가보다. 아빠에게는 철딱서니 아들이 생기고, 신랑에게 인자하신 아빠가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든지 내 아빠를 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아빠 2달 동안 빌려주마! 마음껏 응석도 부리고 칭찬도 받아봐."


공사하는 두 남자들도 바쁘겠지만 땡스기빙과, 신랑의 생일파티까지 준비해야 하는 나도 나름 바쁠 예정이다. 어떻게 하면 감사함과, 행복과, 기쁜 추억이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풍요로움과 감사함이 가득한 땡스기빙이 되길(명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어떻게 차려낼지 숙제다.), 신랑을 이 땅에 보내주신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그 하루를 어떻게 노동과 잘 버무려 멋진 하루로 요리할지 나의 역할이 막중하다.




에드먼튼 팀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막내딸과 혼자가 된 난 밀렸던 드라마를 몰아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아빠가 보낸 증거사진으로 얼마나 일이 진척되었는지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총감독직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에드먼튼 공사중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래미네이트를 깔끔하게 까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며 더 추워지기 전에 외벽 시멘트 마감을 하실 거라고 하셨다. 깨진 상태로 방치되었던 부엌 유리창도 맡겨졌으니 이제 조금씩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가고 있는 듯하다.




저녁 8시가 넘어 겨우 저녁을 드신다고 연락이 왔다. 중간중간 간식도 챙겨서 드셨다니 다행이다. 야간작업에 들어가신다고 하시는데 5일 동안 모든 공사를 마무리할 작정이신가 보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이번 주에 공사가 끝나고 남은 한 달은 밴쿠버로 아빠를 모시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평하고 깔끔하게 마감되지 못한 천정은 어쩔 수 없이 전문가에게 도포를 맡기기로 했다. 그들의 작업은 울툴불퉁한 집 전체 천정과 벽을 말끔하게 갈고 석고로 평평하게 마감하는 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엄청난 먼지와 소음으로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전문가들이 천정이랑 벽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면 우리는 페인트 칠만 하면 끝이야! 엄청 간단하지? 그럼 정말 그다음부터는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다 끝났어!"

물론 난 이 말 중 '페인트만 칠하면 끝이야.'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다 끝났어!'라는 말도 미안하지만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끝이라는 그 말뒤에는 꼭 다른 작업들이 따라왔다. '엄청 간단하지!'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아이방 페인트 칠을 한번 해본 경험상 그 작업은 절대 간단할 수 없고, 쉬울 수도 없는 작업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천정작업 하는 동안 먼지가 많아서 어차피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이번 주는 여기 오지 말고 아이들이랑 집에 있어"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명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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