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37> 10월 27일
주말마다 에드먼턴에서 공사를 하느라 아빠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오늘이 두 번째 함께 드리는 주일예배였다. 어쩌면 캐나다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르는 시간이라 아빠는 유독 사람들과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셨다. 많은 분들이 신기하고 궁금하게 쳐다보시는 가운데 맥피할아버지 부부와 사진을 찍었다. 우리 교회에는 아빠 연배의 분들이 많이 계신다. 매번 부모님이 방문하실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힘 있는 악수 만으로도 친구가 되어주신 좋은 분들이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오늘은 김장하는 날! 캐나다에서 김장이라니 꿈만 같다. 김치를 소금에 절일 수 있는 큰 양동이도, 소금도, 고춧가루도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도, 손맛도 없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의미 있고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김치가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배추 한 박스와, 무 한 박스를 주문했다. 이미 부엌은 배추와 무 만으로도 꽉 찬 것처럼 보인다. 혼자였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김장을 아빠의 지휘하에 용감하게 도전해 본다. 10년 만에 집안에 김치양념 냄새와 군침 도는 보쌈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역시 요리에도 도구빨이다. 집에 양념을 버무릴 대야(?)가 없으니 샐러드 그릇부터 시작해서 전골냄비까지 집안에 그릇이라는 그릇들은 모두 다 출동했다. 엄마가 김장하실 때마다 일등 보조사였다며 자신감을 보이셨던 아빠는 이번에 직접 김장을 지휘하셨다. 뭔가 투박한 손놀림이지만 배춧잎 한잎 한잎이 아빠의 정성으로 옷 입혀졌다. 영하 50도까지도 떨어지는 알버타 추운 겨울을 김장김치 덕분에 든든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김치만 냉장고에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 이 마음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오늘하루에 제목을 붙인다면 <부녀의 날>이라고 해야겠다. 아빠와 내가 부엌에서 김장을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신랑과 막내딸은 윈터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들과 타이어를 교체할 때는 툭탁툭탁 큰소리도 나고 아들의 짜증 섞인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오늘 부녀팀은 아주 사이좋고 평화스럽게 작업을 마친 것 같다. 막내 딸한테는 소리치면 맘상할까 큰소리 한번 안 내며 작업을 한 신랑은 어쩔수 없는 딸바보 아빠다. 아들이 이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섭섭해할까!
열심히 일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꿀맛 같은 식사시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요리도 아니고, 군침을 돌게 만들 만큼 예쁘게 담아서 내온 음식도 아니었지만 식사시간 내내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맛있음을 증명하는 감탄소리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김장? 보쌈고기?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메뉴이다.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일 한식으로 배를 채우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