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59> 11월 19일
평소와 같은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아빠도 마음의 정리를 하시는지 틈틈이 "이번 캐나다방문은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었다!"라고 혼잣말로, 때로는 우리를 향해 여러 번 말씀하신다. 아빠와 딸이, 장인어른과 사위가,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가까워지고 정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용히 둘이서 때로는 온 가족이 북적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낸 지 벌써 60일이 되어간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가시기 전에 차고에 마구잡이로 어질러진 공구와 가득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셨다. 7년 전에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가셨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그 많은 물건들을 가지런하고 찾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셨다.
장로님들과 지인분들께 선물로 보낼 제품들을 하나하나 구입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방한개에 23킬로밖에 안되는데 이 무거운 것들(꿀, 치약)을 모두 가져가실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여행선물이 그렇듯, 많이 준비한 것 같지만 막상 한국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어보면 별로 대단한 것도 없이 왠지 허탈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오늘 이 걱정순이는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초콜릿 한 개라도 더 챙겨 보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아들이 빵을 구웠다. 사실 아들은 빵을 잘 굽지 못한다. 그래도 할아버지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던 예쁜 마음을 알기에 말리지 않았다. 빵이 어떻게 이렇게나 싱거울 수 있는 건지... 게다가 덜 익은 것 같이 허여멀건한 빵을 아빠는 쫀득하다며 쨈을 잔뜩 발라 맛있게 몇 조각을 드셨다. 이제는 아주 사소한 모든 것들이 맛있고, 아름답고, 소중하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되어간다.
밴쿠버에 가시지 못하시고 영상통화로 고모할머니와 통화를 하셨다. 이제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는 아주 정정해 보이셨다. 다행이다. 화면 속 할머니가 아빠를 보시며 깜짝 놀라셨다.
"왜 이리 젋었노!"
할머니께 아빠는 아직 팔팔한 젊은이처럼 보이셨을까?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었다면,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올 수 있었겠지만 결국 난 이렇게 이기적으로 아빠를 내 옆에 붙들어 두었다.
매년 캐나다에 오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우리의 이별이 이렇게 죄송하고 속상하고 아쉽지는 않을 텐데.
저녁 9시가 넘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온 아들이 아빠를 모시고 어디론가 차를 몰고 나갔다.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은 아들이 할아버지와 대화할 때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틈틈이 시간을 내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 마음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 늦은 시간, 차속에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까? 둘만의 행복한 비밀로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