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이해하기 프로젝트 3

by 패미로얄

이 글은 시부모님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시점을 아버님의 핸드폰으로 옮겨 기록한 일상 에세이입니다.


21화 시부모님 이해하기 프로젝트 1

22화 시부모님 이해하기 프로젝트 2




캐나다 출발 2주를 남겨두고 '카톡'소리로 어르신을 깨우는 일이 많아졌다. 시차가 맞지 않아 어쩌다 새벽에 조심스레 '카톡'을 울릴 때면 퉁명스럽게 나를 뒤집어 놓으셨는데, 요즘에는 볼륨까지 높여 놓으시고 불까지 켜놓고 앉아 자세히 내용을 살피신다.

한국말이 서툰 손녀들에게 받는 카톡 메시지는 '할아버지 플리즈~!'라는 부탁의 메시지뿐인데, 섭섭한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신 것 같다.


아침부터 택배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사실 어르신 앞으로 택배가 배달되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뿐이니, 이 또한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겠지만, 하던 일을 팽개치고 부랴부랴 달려 나가 아저씨를 아니 택배를 받아 앉으시는 모습을 보니 분명 손녀들이 부탁한 물건들일 것이다.


나의 랜즈를 러닝셔츠로 몇 번을 문질러 닦으신 후 조심스럽게 택배를 하나하나 찍어서 J(며느리)에게 보내셨다.


'이거 포장 오픈해서 가격표 떼고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냐?'

'네! 모두 열어서 가져오시면 될 것 같아요.'


혹시나 칼이 깊게 들어가 안에 내용물에 흠집이라도 낼까 봐 조심조심 언박싱을 하시는 어르신을 보니 무엇이 들었을까 나까지 호기심이 생겼다. 손녀들이 부탁한 물건들은 거의 모두 옷이었다. 포장을 뜯어 하나하나 펼쳐 보시던 어르신은 짧고 깊은숨을 내쉬셨다. 방바닥에 펼쳐진 막내손녀의 것이라는 청바지는 얼추 사이즈만 봐도 어르신 것과 길이가 비슷했다. 조심스럽게 옷을 쓰다듬는 어르신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면,

'몇 번 안아보지도 못했던 작은 아기가 이렇게 컸다고?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하는 가는 세월에 대한 한탄이지 않을까?


어르신은 손녀들의 옷을 예쁘게 접어 다시 한번 랜즈 속에 담으신 후 J에게 전송하셨다.


'아버님, 고추장은 잊어버리셔도, 이것들은 잊지 말고 챙겨 오셔야 해요~'

'알았어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목소리의 억양을 느끼지도 못하는데,

나를 통해 문자로만 전해지는 이 대화가 얼마나 진심을 담을 수 있을지,

상대방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 의심이 생겼다.


J님은 알고 계실까?

'알았어요~'이 네 글자에 얼마나 많은 어르신의 감정상태가 담겨있는지.

'알았다!'가 '알았어요~'라고 바뀐 말랑말랑한 어르신의 감정상태를 최대한 잘 전달해 드리기 위해 난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제발 이번 여행은 어르신의 감정상태가 지금처럼만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결혼을 하고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아무도 없는 캐나다 땅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곤 나처럼 철없고 나보다 더 아기를 모르는 남편뿐이었다. [음급처치 삐뽀삐뽀] 였던 것 같다. 육아맘들 속에서는 모든 답이 다 들어있는 백과사전과 같다는 그 책을 구하고 싶어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가 아버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몇 달 만에 마주한 화상통화에서 한소리를 들었다.


"넌 책으로만 아이를 키우냐?"

"유난 떨지 마라. 다 사람 사는 덴데 필요한 용품들은 거기서 해결해라. 캐나다는 더 좋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차가웠던 그때 아버님의 연세가 50대였다.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왔던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의 길목에서 아버님은 참 많이도 지치셨던 것 같다. 고되게 힘들었던 하루하루에 대한 보상이 온전히 내가 주인인 손바닥 만한 작은 방과 질기게도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우울증이었으니 말이다.

50대를 앞둔 내가 아버님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보니 그때의 아버님의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지금 아버님의 마음에 얼마나 후회가 많을까 안쓰럽기도 하다.


매월 초면 밀려드는 각종 고지서들과 그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캐나다 이민생활 20년이 되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엄한 답변으로 주변을 갑분싸로 만들어 버릴 때면 이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과 의지보다는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이 먼저 박차고 나올 때가 많다.


오래 버텨온 중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차가움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올까 봐 염려스럽다.

환경적, 신체적 변화 속에서 나의 의지와 다르게 누군가에게 차가운 어른으로 기억되지 않을지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이제는 견디는 시간을 숨 고르기와 함께 받아들이는 시간으로 걸어가야 할 때이다. 말랑말랑한 어른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