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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Jul 13. 2023

내 머리는 버퍼링 중

캐나다에서 집주인 아줌마 되기

Eviction notice를 붙여놓은지 14일 후. 정확히 2023년 7월 3일이면 집은 깨끗이 비워져야 한다.

7월 4일 사람들에게 약간의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신랑과 나는 퇴근 후 늦은 밤 2시간 거리의 에드먼튼으로 향했다.

물론 깨끗이 정리된 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불청객들이 모두 떠나가 주기만을 바랬을 뿐이다.

집에 도착한 순간 우리를 반긴 건 문밖 정원에 주인 없이 흐트러져있는 생활쓰레기 더미였다. 이불, 옷, 신발, 먹다 남은 곰팡이핀 음식들 그리고 부서진 가구들.


1층으로 들어가는 정문과, 지하로 들어가는 옆문은 도어락이 모두 부서진 채로 그대로 오픈되어 있었다. 마치 동네 홈니스들을 위해 일부러 맘 좋게 열어놓은 집처럼 말이다. 집으로 들어가니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계단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서리가 모두 부서져 있으며 문지방은 다 뜯겨있고, 부엌, 거실, 방, 화장실 할 것 없이 폐허 수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이리도 가지고 있는 게 많았을까? 공간마다 수북이 쌓여있는 생활 쓰레기들과 술병들을 보며 세상근심 모두 내려놓고 약과 술에 취해 쾌락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지리도 없는 나의 비루한 상상력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활발하게 두뇌로 스냅사진들을 보내주었다.


서로 한 공간에 있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나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길까 두려웠을까? 방문마다 간이로 설치된 자물쇠 흔적을 보며 나도모르게 차가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말 한번 한 적 없고, 누구를 죽도록 미워해 본 적도 없다고 자부할 만큼 세상과 상황에 너그러웠던 나였건만 화장실 변기 안에 꽉꽉 넘치도록 채워진 오물을 보는 순간 내 안에 잠자고 있었던 나의 다른 자아가 스멀스멀 깨어나는 것 같았다. 


지하 보일러실에 설치되어 있던 세탁기와 건조기가 복도에 나와있었다. 신랑의 생각으로는 아마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세탁기를 복도로 꺼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던 것 같다고 한다. 갑자기 예전에 티브이에서 보았던 어떤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병적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쓰레기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집을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집의 상태가 너무 역겨워 한편도 채 보지도 못하고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방송에서 보았던 그 집을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많은 쓰레기들을 어떻게 치워야 하지? 너무 미안해서 청소업체를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벽이며 바닥이며 창문이며 성한 곳이 한군대도 없어서 대대적인 실내공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쓰레기라도 치워야 업자에게 의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 신기하게도 웃음만 나온다. 남편도 같은 마음인가보다. 자꾸 헛웃음이 나온다. 사람이 이렇게도 미칠 수 있구나 싶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네" 신랑의 한 마디에 아무말 없이 따라나와 차에 올랐다. 식당까지 오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현관문) 두 개가 완전히 부서진 상태이다. 열쇠만 교체할 생각이었지만 문과 기둥사이가 완전히 훼손되어 문 전체를 바꿔야 할 것 같다. 


✔️보일러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 보일러와 물탱크가 고장이 난 것 같다.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집안 그 어느 곳에도 물을 쓴 흔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달 난 물값으로만 400불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 나오지도 않는 물값을 40만 원 넘게 냈다니... 아마도 집 수도 파이프를 고장 낸 것 같다. 메인 수도파이프를 끊어 갔다고 한다. 집안에 고철로 팔 수 있는것들은 죄다 뜯어간것 같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이 없는데 집안에 모든 전기가 차단된 상태이다. 전력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전력공급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한다. 집안에 전기배선을 다시 점검해야할 것 같다. 


✔️화장실 유리, 변기, 세면대, 욕조 모두 파손. 특히 변기에 가득찬 변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까마득 하다. 이미 오래전에 굳어 버린것 같은데....수도를 연결하고 변기를 내리려고 시도하다 넘치면 어쩌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견딜수가 없다.


밥은 무슨...밥이 목구멍으로 넘아가질 않았다.


결국 열쇠도 바꾸지 못하고 우리는 처음 상태 그대도 오픈 된 집을 뒤로하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밤에도 집 없는 누군가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지도 모르는 나의 랜트하우스는 부끄러운 속살을 다 내어 보이며 방치되어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내 머릿속은 계속 버퍼링만 계속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비스 불가 지역에서 미세한 신호라도 잡기 위해 와이파이 레이다를 돌려대는 내 핸드폰 홈화면면 모습이 내 모습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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