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질 때,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지난주 상담실에서 만난 내담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왜 저는 매번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걸까요? 겉모습은 다 달라도 결국 나를 떠나는 사람들이에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낸시 맥윌리엄스(Nancy McWilliams)의 말을 떠올렸다. 정신분석가인 맥윌리엄스는 『정신분석적 진단』(2007년, 54쪽)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강력한 경험 중 하나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오랜 시간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늘 사랑을 '선택'이라고 믿어왔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내가' 골랐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놀랍게도, 우리는 사랑할 때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이 우리를 어떤 사람에게 '끌리게' 만든다.
맥윌리엄스는 수십 년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 충격적인 패턴을 발견했다. 그녀의 관찰에 따르면:
방임적인 부모를 둔 아이는 성인이 되어 자기를 방치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둔 딸은 술에 취약한 남자를 선택한다.
우울한 어머니와 자란 아들은 불행한 여성의 그림자에 매혹된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강박적 선택이다.
처음 이 이론을 접했을 때, 나는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아니야, 나는 다르게 선택했어.'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특징들이 있었다. 마치 같은 사람의 다른 버전들을 만난 것처럼.
'그 장면'을 다시 살기 위해, 우리는 다시 사랑한다
맥윌리엄스는 자신의 치료 사례 중 특별히 인상적인 하나를 소개한다. 40대 중반의 성공한 사업가였던 그 남성은 최근 한 여성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가슴이 뛰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가 사랑에 빠진 여성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카페 문을 열고,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와 담배를 손에 들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그녀의 루틴이었다.
몇 개월간의 상담을 통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어머니 역시 매일 아침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부엌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먼 곳을 바라보던 어머니. 어린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늘 궁금해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왜 그렇게 슬퍼 보일까?'
그는 상담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불가사의하게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장면이 '재현'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의 전형적인 예다. 우리는 과거의 미해결된 상황을,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를 현재의 관계에서 반복하려 한다.
무의식의 시나리오
상담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 반복강박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 놀라워한다. 마치 무의식이 영화감독처럼 캐스팅을 하는 것 같다. '이번 배역에는 차갑고 거리를 두는 여성이 필요해. 어머니처럼.' '이번에는 화를 잘 내지만 금세 후회하는 남자가 필요해. 아버지처럼.'
한 30대 여성의 사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세 번의 진지한 연애를 했는데, 세 남자 모두 처음에는 열정적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감정적으로 철수하는 패턴을 보였다.
"정말 이상해요. 처음엔 다 달라 보였는데, 결국 똑같아지더라고요."
깊이 탐색해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온 가족을 들뜨게 만들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조금 지나면 흥미를 잃고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버리는 사람. 어린 딸은 그런 아버지의 관심을 붙잡아두려 애썼지만 늘 실패했다.
이제 어른이 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남자들을 선택하고 있었다. 왜? 이번에는 성공하고 싶어서. 이번에는 그 차가워지는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붙잡아두고 싶어서.
맥윌리엄스는 이런 현상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과거의 실패를 '수정'하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를 어른이 되어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는 대상이 과거의 인물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과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방임적 부모와 자기 방치의 연인들
맥윌리엄스가 제시한 첫 번째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방임적인 부모를 둔 아이는 자기를 방치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방임은 학대만큼이나 파괴적이다. 때로는 더 파괴적일 수 있다. 학대받은 아이는 적어도 '나는 부모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비록 그것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더라도. 하지만 방임된 아이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느낀다.
상담실에서 만난 35세 남성 K씨의 이야기다. 그의 부모는 맞벌이로 바빴고, 그는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은 텅 비어있었다. 저녁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혼자 해결했다. 아플 때도 혼자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저는 투명인간 같았어요. 부모님은 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정작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무서워하는지는 모르셨죠."
성인이 된 K씨는 연애할 때마다 비슷한 패턴을 경험했다. 그가 끌리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이었다. 커리어우먼, 대학원생, 스타트업 대표... 그들은 K씨와의 데이트를 자주 취소했고,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이상하죠? 저는 늘 외롭다고 불평하면서도, 시간이 많은 여자는 부담스러워해요."
이것이 바로 방임의 역설이다. 방임된 아이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오히려 불안해한다. 동시에 늘 외로움을 느낀다. 이 모순적인 욕구 때문에 그들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K씨는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저는 어린 시절의 빈 집을 계속 재현하고 있었어요. 늘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그 상황을요."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딸들
두 번째 패턴: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둔 딸은 술에 취약한 남자를 선택한다."
이것은 단순히 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독적 행동 패턴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알코올, 일, 게임, 도박... 무엇이든 그것에 빠져 가족보다 우선시하는 행동들.
맥윌리엄스는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들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산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다정한 아빠지만, 술을 마시면 무서운 괴물이 된다. 아이는 늘 긴장 상태에 있다. '오늘은 어떤 아빠가 집에 올까?'
이런 환경에서 자란 딸들은 놀랍게도 비슷한 남자를 선택한다. 왜일까? 맥윌리엄스는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익숙함이다. 혼돈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관계가 그들에게는 '정상'이다. 안정적인 관계는 오히려 지루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둘째, 구원 환상이다.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시절 아버지를 구원하지 못한 죄책감이 어른이 되어 재현된다.
셋째, 자기 가치감의 문제다. '나는 이 정도 사람이 어울려.'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종종 낮은 자존감을 갖는다.
42세 여성 M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평생 돌봤다. M씨는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첫 번째 남편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중독자였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고, 가족 행사도 일 때문에 빠졌다. 결국 이혼했다.
두 번째 남편은 일도 술도 적당히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 밤새 게임을 하고, 월급의 상당 부분을 게임 아이템에 썼다.
"저는 정말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다 똑같더라고요. 무언가에 중독되어 저와 아이들을 뒷전으로 미루는 사람들..."
상담 과정에서 M씨는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그녀는 '돌보는 역할'에 중독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걱정하고, 구원하려 애쓰는 것이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울한 어머니의 아들들
세 번째 패턴: "우울한 어머니와 자란 아들은 불행한 여성의 그림자에 매혹된다."
우울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독특한 경험을 한다. 그들은 너무 일찍 '돌보는 자'가 된다. 어머니의 기분을 살피고, 위로하려 애쓰고, 집안일을 대신한다. 이를 '부모화(parentification)'라고 부른다.
맥윌리엄스는 특히 아들의 경우 이런 경험이 미래의 연애 패턴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구원자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불행한 여성을 보면 구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38세 P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어머니는 만성 우울증을 앓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늘 슬픔에 잠겨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엄마를 웃게 만들려고 애썼어요. 학교에서 상 받아오고, 집안일 돕고,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고... 하지만 엄마의 슬픔은 너무 깊어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었죠."
성인이 된 P씨는 늘 '문제 있는' 여성들과 연애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섭식장애... 각자 다른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모두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저는 그녀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제 사랑으로 그녀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매번 실패했죠."
가장 최근의 연애가 특히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P씨는 2년 동안 헌신적으로 돌봤다. 병원도 같이 다니고, 약도 챙겨주고, 매일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P씨까지 우울해졌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제가 어릴 때 엄마를 돌보던 그 아이 같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구원할 수 없었던 그 무력한 아이..."
맥윌리엄스는 이런 패턴의 비극성을 지적한다. 우울한 어머니의 아들들은 여성의 불행에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낀다. 그들은 모든 여성의 불행이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타인의 정신적 고통은 누군가의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실패하고, 그 실패는 어린 시절의 무력감을 재확인시킨다.
무의식의 캐스팅 디렉터
맥윌리엄스의 통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의식을 '캐스팅 디렉터'에 비유한 부분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과거의 중요한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현재의 무대에 캐스팅한다.
이 캐스팅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겉모습이 달라도 본질적인 특징은 유사하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아버지 → 수동적 공격성을 가진 남편
침묵하는 어머니 → 감정 표현을 못하는 아내
비판적인 부모 → 완벽주의적 연인
불안정한 양육자 → 일관성 없는 파트너
문제는 우리가 이 캐스팅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식적으로는 "이번엔 정말 다른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의식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반복강박의 숨겨진 소망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복하려 할까? 맥윌리엄스는 프로이트의 개념을 확장하여 설명한다. 반복강박에는 숨겨진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만들고 싶다."
이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한 시나리오를 다시 쓰고 싶어 한다. 이번에는 해피엔딩으로.
떠난 아버지를 붙잡지 못한 딸은, 떠나려는 남자를 붙잡으려 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은, 차가운 여자의 마음을 녹이려 한다.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는, 무관심한 연인의 관심을 끌려 한다.
문제는 이 시도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왜?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사람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앞의 연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대신 과거의 유령을 본다.
사랑의 맹목성: 전이의 마법
맥윌리엄스는 사랑의 초기 단계에서 일어나는 '전이(transference)'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전이란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현재의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과거의 사랑받고 싶었던 대상의 이미지를 투사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속담의 정신분석학적 설명이다.
예를 들어, 차가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있다고 하자. 그는 따뜻한 여성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막상 따뜻한 여성을 만나면 불편해한다. 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차가운 여성을 선택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그녀가 따뜻하다고 믿는다. 초기의 작은 친절함을 과대평가하고, 차가운 신호들은 무시한다.
이런 선택적 지각은 관계 초기에 특히 강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드러나지만, 그때는 이미 깊이 얽혀있다. 그리고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내가 더 노력하면 이 사람이 변할 거야."
치료실에서의 재현
맥윌리엄스는 치료 장면에서도 이런 반복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내담자들은 치료자에게도 과거의 관계를 전이한다.
비판적인 아버지를 둔 내담자는 치료자의 중립적 표현도 비판으로 듣는다. 방임적인 어머니를 둔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낀다. 이것을 '치료적 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맥윌리엄스는 이것이 오히려 치유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치료실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과거의 패턴을 재현하고, 이번에는 다른 반응을 경험함으로써 교정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힘
그렇다면 우리는 이 반복강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맥윌리엄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인식은 변화의 시작이다. 우리가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때, 비로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녀는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한다:
패턴 인식하기: 자신의 연애 역사를 돌아보고 공통점 찾기
과거와 연결하기: 현재의 패턴과 어린 시절 경험의 연관성 탐색
감정 느끼기: 과거의 미해결된 감정을 인정하고 애도하기
현재에 머물기: 과거의 렌즈가 아닌 현재의 눈으로 상대방 보기
다르게 반응하기: 과거와 같은 자극에 새로운 반응 시도하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
맥윌리엄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포로인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이다.
반복강박은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신이 치유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비록 그 방식이 역설적이고 고통스럽더라도.
중요한 것은 완벽한 탈출이 아니다. 맥윌리엄스도 강조하듯, 우리는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의식의 빛을 비춤으로써 무의식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사랑은 여전히 강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박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진정한 만남의 가능성이 열린다.
당신이 또다시 '그런 사람'에게 끌린다면, 잠시 멈추고 물어보라:
"이 끌림 속에 어떤 옛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에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맥윌리엄스의 말처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험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치유와 성장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하라. 비록 그것이 강박적일지라도. 다만 눈을 뜨고 사랑하라. 과거를 인식하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