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졌을 때 찾아온 악몽
당신이 2년간 꿈꿔왔던 일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그런데 그 순간, 행복해야 할 그 순간에 갑자기 깊은 우울감이 찾아온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대리언 리더가 『우리는 왜 우울할까』에서 소개한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2년간 남자친구와 대서양을 건너다니며 장거리 연애를 했다. 매주 주말이면 번갈아가며 비행기를 타고 서로를 만나러 갔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런던에서 뉴욕으로. 시차와 피로에 지쳐가면서도 사랑을 지켜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김포공항과 하네다공항을 오가며 일본인 아내와 3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던 내 친구가 떠올랐다. 그 역시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김포공항으로 향했고,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돌아왔다. "공항이 제2의 집 같았어," 그가 농담처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경우,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남자친구가 런던에서 자리를 잡기로 한 것이다. 더 이상 지친 비행을 할 필요도, 시차 적응에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드디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여자는 울적하고 무력해졌다. 이런 기분이 점점 심해지면서 관계는 무너졌고,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욕망의 역설: 얻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표면적으로는 간단해 보인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욕망할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움과 먼 거리가 특징이었던 관계에서 장애물들이 제거되자, 간절히 바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연애하던 커플이 한 도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오랫동안 꿈꿔왔던 직장에 입사했는데 의외로 허무하거나, 간절히 원하던 물건을 샀는데 금세 시들해지는 경험 말이다. 욕망은 종종 과정에 있지, 결과에 있지 않다.
하지만 리더가 분석한 이 여성의 경우는 단순한 욕망의 소멸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실이 있었다.
히스로 공항의 눈물, JFK 공항의 슬픔
몇 년 후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2년간의 장거리 연애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만나는 순간이 아니라 헤어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억은 히스로 공항과 JFK 공항에서 슬픔이 북받치는 장면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자친구와 마주 보며 "또 만나자"고 말하는 그 순간들, 뒤돌아서면서 손을 흔드는 그 순간들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한국의 정신분석가 김형경은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 자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별의 순간에 사랑의 감정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상실의 공포가 사랑을 극대화시키기 때문이다.
왜 작별의 순간이 그토록 중요했을까?
14세 소녀가 잃어버린 것
리더에 따르면, 진실은 그녀의 과거에 있었다. 14세 때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그녀에게 아버지의 병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곧 회복되어 돌아오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떠올렸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암 진단을 환자 본인에게조차 알리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녀가 아버지와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몇 주 동안 입원해 있던 아버지를 문병조차 가지 못했고, 학교 교실 밖에서 갑작스럽게 부고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14세 소녀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을 놓쳤다.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사랑한다고 전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백 번의 작별이 주는 위로
이제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리더는 그녀가 그토록 먼 곳에 사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분석한다.
대서양을 건너다니는 주말여행은 그녀에게 **'백 번의 작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버지와는 전혀 할 수 없었던 일을 남자친구와는 매주 반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번 공항에서 헤어질 때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사랑해", "보고 싶을 거야", "조심해서 가" 같은 말들을.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그 모든 말들을 남자친구에게 쏟아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우리는 종종 과거의 미완성된 관계를 현재의 관계에서 반복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한 형태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스로 공항과 JFK 공항에서의 눈물은 단순한 이별의 아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14세 소녀가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었고,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작별인사의 대리 수행이었다.
작별이 사라진 순간, 사랑도 사라졌다
남자친구가 런던으로 이사 와서 둘 사이의 거리가 제거되었을 때, 더 이상 작별인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순간 그녀의 사랑은 시들기 시작했다.
리더의 분석에 따르면, 그 사랑의 본질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헤어지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와 함께 반복할 수 있었던 완전한 작별의 의식이었다.
작별인사를 할 수 없게 된 바로 그 순간,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우울 감정의 밑바닥에는 끝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있었다.
현대인의 미완성된 슬픔들
이 여성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제대로 된 작별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이런 일이 많다. IMF 이후 급작스런 해고로 동료들과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난 사람들, 코로나19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가족들, 갑작스런 이별로 인해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채로 헤어진 연인들.
정신과 의사 김현수는 "한국인의 정신건강 문제 중 상당 부분이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상실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나약함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그 결과 수많은 미완의 애도를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채로
화해할 기회를 놓친 채로 영원히 헤어진 사람들
마지막 인사도 없이 떠나보낸 소중한 사람들
이런 미완성된 슬픔들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남아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과도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상한 행동 패턴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반복을 통한 치유의 시도
리더가 분석한 그녀의 2년간의 장거리 연애는 반복강박의 한 형태였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 상황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포공항과 하네다공항을 오가던 내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도 공항에서 헤어질 때가 가장 사랑이 확실하게 느껴졌어. 다음에 또 만날 건데도 마치 영원한 이별인 것처럼 슬펐지."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역시 고등학생 때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었다. 교통사고였다.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복은 완전한 치유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작별인사를 해도 과거의 미완성된 이별은 치유되지 않는다.
진정한 치유는 의식적인 인식에서 시작된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이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반복 패턴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주와 운명, 그리고 애도의 시간
흥미롭게도 동양의 사주명리학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찾을 수 있다. 사주에서 '편인'이 강한 사람은 이별과 상실의 경험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관계에서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한 사주상담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편인이 강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별을 예상하고 산다. 그래서 오히려 이별의 순간에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마치 평생 준비해온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이는 서양의 정신분석과 동양의 운명론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
리더의 이 사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사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 자체인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재현하는 어떤 패턴인가?
나는 최근 한 커플 상담에서 비슷한 경우를 만났다. 남편은 아내가 출장을 갈 때마다 극도로 불안해했다. 그런데 막상 아내가 돌아오면 오히려 짜증을 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주 출장을 가셨고, 그때마다 혼자 남겨지는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는 아내의 출장을 통해 그 두려움을 반복하면서도, 동시에 "이번엔 꼭 돌아올 거야"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했다.
미완성된 작별이 있다면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편지를 써보거나, 마음속으로 대화해보거나, 추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신분석가 김서영은 "빈 의자 기법"을 추천한다. 빈 의자에 떠난 사람이 앉아있다고 상상하고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하는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많은 내담자들이 이 과정을 통해 큰 위안을 얻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당신의 반복 패턴은 무엇인가?
같은 유형의 사람과 연애하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들이 있는가?
한 내담자는 항상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과 연애를 했다. 그리고 매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라며 관계를 끝냈다. 분석 결과, 그녀는 어린 시절 감정표현이 서툰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 상황을 반복하며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희망과 "역시 안 되는구나"라는 절망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마음의 공항에서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공항'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작별을 하지 못한 채로 떠나보낸 사람들, 하지 못한 말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있는 곳이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어떤 이들은 긴 이별을 위해, 또 어떤 이들은 영원한 작별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 공항에서 우리는 때로 같은 비행기를 계속 기다리고, 이미 떠난 사람을 계속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그 오래된 작별의 의식을 반복하려고 한다.
정신분석가의 관점: 애도의 과정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1917)에서 정상적인 애도와 병적인 우울을 구분했다. 정상적인 애도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병적인 우울은 상실한 대상과의 양가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했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4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었고, 작별 인사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 미완성된 애도가 성인이 되어 장거리 연애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정신분석가 한스 로발트는 "우리는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이전의 모든 상실을 다시 경험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상실이 제대로 애도되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이별이 더 고통스러워진다.
사주상담가의 관점: 인연의 흐름
사주명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만남과 이별에는 때가 있다. '인연법'에 따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치유의 인연'이었을 수 있다. 비록 완전한 치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동양철학에서는 "때가 되면 만나고, 때가 되면 헤어진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느냐다.
치유를 향한 여정
진정한 치유는 그 공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미완성된 작별을 마음속으로나마 완성해가는 것이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은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패턴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의 '백 번의 작별'이 실은 단 한 번의 작별 - 아버지와의 작별 - 을 향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즉각적인 치유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런 고통을 겪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는 서서히, 아주 천천히 치유의 과정을 시작하게 한다.
현대 한국 사회와 애도
한국 사회는 특히 애도에 서툴다. 장례식장에서도 3일이면 모든 것을 끝내야 하고, 회사는 3일의 경조사 휴가만을 인정한다. 마치 3일이면 모든 슬픔이 끝나야 하는 것처럼.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집단적 애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상실과 애도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언제까지 슬퍼할 거야?" "이제 그만 잊어야지" 같은 말들이 애도의 과정을 중단시킨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애도는 사랑한 만큼 오래 걸린다"고 말한다. 깊이 사랑했다면 그만큼 오래 슬퍼할 권리가 있다. 그 시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새로운 작별법 배우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작별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미완성된 작별을 완성할 수 있을까?
첫째, 작별을 의식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는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라는 납관사가 있다. 그들은 고인을 정성스럽게 준비시켜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이런 의식은 남은 사람들에게 작별의 시간을 준다.
둘째, 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다. 편지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셋째,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애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그 사람 없는 생일과 명절을 몇 번 보내야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랑의 본질을 묻다
리더의 사례는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상대방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통해 충족하려는 우리 자신의 욕구인가?
프롬이 말하는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 구분은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미성숙한 사랑은 결핍에서 시작한다. 내게 없는 무언가를 상대방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내 공허함을 상대방의 존재로 메우려는 욕구가 그 근본에 있다. 반면 성숙한 사랑은 충만함에서 시작한다. 내가 이미 온전한 존재로서 상대방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사랑은 어쩌면 미성숙한 사랑이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작별의 의식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남자친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때로는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치유자들의 만남
융은 "의사는 자신이 치유된 만큼만 환자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연인들이다. 각자의 과거에서 가져온 상처들을 안고 만나,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고, 때로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완벽하게 치유된 후에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치유되고, 치유되면서 사랑하는 것이다.
한 정신분석가는 이렇게 말했다. "관계는 두 사람의 노이로제(신경증)가 만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이로제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이로제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거울 속의 자아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사랑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역설적인 정의는 사랑의 본질적인 환상을 드러낸다.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이상적인 자아를 투사하고, 그 투사된 이미지를 사랑한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경우,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완벽한 작별을 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통해 14세 때 하지 못했던 작별을 반복했다. 매주 공항에서 "사랑해", "보고 싶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사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문제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투사한 환상 속의 존재로만 볼 때, 관계는 왜곡되기 시작한다.
욕구와 욕망 사이에서
정신분석은 욕구(need)와 욕망(desire)을 구분한다. 욕구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신다. 욕구는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욕망은 상징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다.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난다.
사랑은 욕구인가, 욕망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 동시에 그 연결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도 있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의 경우,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처음에는 욕망의 차원에서 작동했다. 반복되는 작별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무의식적 욕망. 하지만 남자친구가 런던으로 이사 오면서 그 욕망의 구조가 무너졌다. 더 이상 작별이 없으니 욕망도 사라진 것이다.
사랑의 경제학: 주고받음의 환상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일종의 거래로 생각한다. "내가 이만큼 사랑했으니 너도 이만큼 사랑해줘야 해." 이런 계산적인 사고는 사랑을 왜곡시킨다. 사랑은 장부를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모든 관계에는 어느 정도의 주고받음이 있다는 것을. 단지 그것이 1대 1의 등가교환이 아닐 뿐이다. 누군가는 안정감을 주고 열정을 받는다. 누군가는 자유를 주고 헌신을 받는다. 이 교환은 의식적이지 않고 무의식적이며, 명시적이지 않고 암묵적이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콧은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완벽한 어머니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어머니. 이는 사랑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사랑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사랑.
반복강박과 사랑의 패턴
프로이트는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한다고 했다. 이를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상황을 재현하며,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얻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같은 결과를 얻고 만다.
연애에서도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둔 여성이 계속 알코올 중독자와 연애를 한다. 정서적으로 차가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계속 정서적으로 차가운 여성을 만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익숙한 패턴을 찾아가는 것이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작별을 반복할 수 있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장거리 연애는 그녀에게 매주 작별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위안이 되는 반복이었다.
치유로서의 사랑, 사랑으로서의 치유
그렇다면 사랑은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 자체가 치유는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치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새로운 관계에서 과거와 다른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안정적이고 일관된 사랑을 경험할 때, 그 두려움은 서서히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자신의 패턴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미성숙한 사랑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리더가 소개한 여성은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패턴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안다. 그리고 아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다.
마지막 질문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그녀의 '백 번의 작별'이 결국 한 번의 진정한 작별로 이어질 수 있을까?
리더는 책에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패턴을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시작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미완성된 작별을 완성해가고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통해, 누군가는 예술을 통해, 누군가는 종교를 통해.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 바로 평화다.
그녀의 '백 번의 작별'이 결국 한 번의 진정한 작별로 이어지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참고문헌: 대리언 리더. 『우리는 왜 우울할까』 (서울: 동녘사이언스, 2011). 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