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당신이 반복하는 관계의 비밀
전이(Transference)
서른두 살 지영의 세 번째 이별
늦은 저녁, 강남의 한 와인바.
지영(가명)은 와인잔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붉은 와인이 잔 안에서 소용돌이를 그렸다.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또야? 진짜 네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니?"
맞은편에 앉은 친구 수진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서른두 살, 세 번째 연애가 막 끝났는데, 이별의 이유가 놀랍도록 똑같았으니까.
"너무 집착한다." "숨이 막힌다." "좀 거리를 두고 싶다."
세 명의 남자가 한 목소리로 했던 말들이었다.
처음엔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필 이상한 남자를 만났네.' 두 번째는 우연의 일치라고 여겼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또 있다니.' 하지만 세 번째라니. 이쯤 되면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알아. 내가 문제인 거 같아. 근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지영의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왜 자신은 늘 감정 표현에 인색한 남자들에게 끌리는지. 처음엔 다정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차가워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은 더 매달리게 되고, 결국 상대는 부담스러워하며 떠나가는 이 반복되는 패턴의 이유를.
"혹시 내가 뭔가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지영은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100년도 더 전에 한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놀라운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빈의 붉은 소파에서 시작된 이야기
1900년, 오스트리아 빈.
베르크가세 19번지의 아파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진료실은 독특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붉은 벨벳으로 덮인 소파, 은은한 가스등 불빛, 그리고 벽을 가득 메운 고대 유물들. 이곳에서 인류 정신의 가장 깊은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었다.
그해 가을, 18세 소녀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프로이트는 후에 그녀를 '도라'라는 가명으로 부르게 된다. 도라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침과 목소리 상실, 그리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선생님, 제 딸을 좀 도와주세요. 의사들은 모두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도라의 아버지는 유명한 사업가였다. 그는 딸의 히스테리 증상에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예리한 눈은 이미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도라가 증오한 남자, K씨
도라의 이야기는 복잡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K부인과 공공연한 불륜 관계였다. 그리고 K씨는 열네 살 때부터 도라에게 구애를 해왔다. 호숫가에서 산책하던 중 갑작스럽게 키스를 시도한 사건 이후, 도라는 K씨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 남자는 역겨워요! 제게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니까요!"
도라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는 K씨를 비난하면서도 이상하게 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마치 증오하면서도 집착하는 것처럼.
프로이트는 조용히 들으며 관찰했다. 수십 번의 상담이 이어졌고, 점차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이(Transference)의 발견
"도라 양, 당신은 K씨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까?"
프로이트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도라는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 그저 그 사람이 싫을 뿐이에요."
하지만 분석이 깊어질수록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도라는 K씨에게 아버지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분노한 대상은 K씨가 아니라, 자신을 배신하고 K부인과 불륜 관계를 맺은 아버지였다.
더 깊이 들어가자, 도라의 무의식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사랑과 배신감, 의존과 분노,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성적 긴장감까지.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전이(Transference)'라고 명명한 현상이었다. 과거의 중요한 인물(주로 부모)에 대한 감정을 현재의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하는 것. 마치 오래된 필름을 새로운 스크린에 영사하듯이.
프로이트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환자는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현재의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한다. 이는 마치 오래된 악보를 새로운 악기로 연주하는 것과 같다."
팀장님이 무서운 28살 민수(가명)
2024년 서울, 광화문의 한 대기업 사무실.
"팀장님이 '민수 씨, 잠깐 볼까요?'라고 부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박민수(28세)는 손에 땀을 쥐며 말했다. 그는 이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팀장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떨렸다. 회의 시간이 다가오면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면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이상한 것은 동료들의 반응이었다.
"우리 팀장님이? 회사에서 제일 합리적인 분인데." "피드백도 정확하고, 칭찬도 잘 해주시잖아." "너무 좋은 상사 만나서 복 받은 거야."
민수는 혼란스러웠다. 자신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동료들이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어느 날 점심시간, 민수는 오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상해. 팀장님이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 사람만 보면 숨이 막혀."
친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팀장님이 누구랑 닮지 않았어?"
그 순간, 민수의 머릿속에 번개가 친 것 같았다.
"아... 아버지."
형의 그늘에 가려진 동생
민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감이었다.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집안에서도 학교에서처럼 행동했다. 매 학기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민수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겨우 이 정도야? 네 형은 전교 1등이었는데."
민수의 형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형을 편애했고, 민수는 늘 비교 대상이 되었다.
"형이 의사 됐을 때 아버지가 온 동네 잔치를 열었어요. 나는... 그냥 투명인간 같았죠."
민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대학도 나름 좋은 곳에 갔지만, 아버지에게는 '서울대가 아닌 곳'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민수는 깨달았다. 팀장의 모든 것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40대 후반의 나이, 낮고 굵은 목소리, 권위적인 체격, 그리고 무엇보다 실수를 지적할 때의 그 표정까지.
민수는 팀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팀장을 통해 아버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런던의 벤치에 앉아 먹는 여자
이제 영국의 정신분석가 조안 시밍턴과 네빌 시밍턴이 『윌프레드 비온 입문』(임말희 역)에서 소개한 놀라운 사례를 들려드리고 싶다.
런던의 흐린 오후. 안개가 자욱한 날씨는 이 도시의 일상이었다. 정신분석 상담실을 나온 35세 여성이 또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분석가의 집 근처 작은 공원,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나무 벤치.
그녀는 가방에서 테스코에서 산 샌드위치를 꺼내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도, 비가 내려도, 심지어 눈이 와도 그녀는 이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왜 항상 여기서 먹는 걸까?"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매번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따뜻한 집도, 아늑한 카페도 아닌 이 차가운 벤치에서.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
런던에서 정신분석을 받던 이 여성에게는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상담이 끝나면 늘 분석가의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뭔가를 먹었다.
처음엔 분석가인 조안 시밍턴도 별생각이 없었다. 런던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건 흔한 풍경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겨울에도, 비가 와도, 그녀는 그 벤치를 찾았다는 것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상담이 끝날 때마다 보이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50분의 상담 시간이 다 되어가면, 그녀는 이상하게 안절부절못했다. 가방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고, 일어서다가 다시 앉고,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다음 주에 또 봬요." "아, 그런데 제가 깜빡한 게 있는데..."
떠나기 싫어서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분석가는 이런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이 사람은 나와 헤어지는 걸 몹시 힘들어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당신은 엄마 무릎을 찾고 있어요"
몇 달간의 관찰 끝에, 분석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당신이 매번 떠나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상담이 끝난 후 벤치에 앉아 뭔가를 먹는 것도... 혹시 그 벤치가 엄마의 무릎 같은 안전한 공간은 아닐까요?"
그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뭐라고요? 제가 엄마한테 매달리는 아기 같다고요? 말도 안 돼요! 저는 35살의 독립적인 여성이에요. 직장도 있고,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고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목소리는 떨렸다.
"벤치에서 먹는 건 그냥 편해서예요. 사람 많은 카페가 싫어서 조용한 곳을 찾는 것뿐이에요. 그게 뭐가 문제죠?"
하지만 정신분석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렇게 강하게 부정할 때일수록, 그 해석이 무의식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다는 신호라는 것을.
워킹맘의 딸이 품은 그리움
상담이 끝난 후, 그녀는 평소처럼 벤치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면서도 분석가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엄마의 무릎..."
순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워킹맘이었던 엄마.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던 엄마. 다섯 살 꼬마는 매일 현관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오면 냅다 안기려 달려갔지만, 엄마는 늘 피곤하다며 금세 그녀를 내려놓았다.
"엄마 무릎에 앉고 싶어요." "나중에. 지금은 엄마가 너무 피곤해."
그 '나중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엄마 손을 놓기 싫어 울먹였다.
"큰 애가 왜 이래? 다른 애들이 보면 창피하잖아."
그 후로 그녀는 아무리 떨어지기 싫어도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법을 배웠다.
벤치가 들려준 진실
벤치에 앉아 과거를 떠올리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이 딱딱하고 차가운 나무 벤치가 주는 묘한 안정감. 그것은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엄마의 무릎을 대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
그녀가 늘 하던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 편안함은 아이가 엄마 품에서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현상을 '전이(transference)'라고 부른다. 과거의 중요한 사람(주로 부모)에게 느꼈던 감정을 현재의 누군가에게 무의식적으로 옮기는 것.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느꼈던 그리움과 의존 욕구를 분석가에게 전이하고 있었고, 상담실을 떠나는 것을 마치 엄마와 헤어지는 것처럼 힘들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벤치는? 그것은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좀 더 머물고 싶은 욕구를 달래주는 대체물이었다. 실제로는 엄마(분석가) 곁에 있을 수 없으니, 대신 가까운 곳에서 엄마를 상징하는 무언가(벤치)와 함께 있으려 했던 것이다.
라캉의 '대상 a'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의 이론을 빌리면, 이 벤치는 일종의 '대상 a(objet petit a)'라고 볼 수 있다. 대상 a란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무언가, 그래서 끊임없이 찾아 헤매지만 결코 완전히 되찾을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을 말한다.
그녀에게 벤치는 단순한 나무 의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했던 엄마의 품, 따뜻함, 안전함을 상징하는 대상이었다. 비록 차갑고 딱딱하지만, 그 위에 앉아 있으면 마치 엄마 무릎에 앉아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먹으면 편안해요. 마치 그곳에 내 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녀의 이 말은 단순한 편안함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내 자리'란 바로 어린 시절 갈망했지만 얻지 못했던 엄마 품속의 그 자리였다.
분노에서 눈물로, 그리고 치유로
다음 상담 시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처음엔 정말 화가 났어요. 제가 뭐 철없는 아이도 아니고... 하지만 벤치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그녀는 엄마와의 관계, 늘 기다렸지만 충족되지 못했던 스킨십에 대한 갈망,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다.
"엄마는 늘 바빴어요. 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 바빴던 거예요. 하지만 어린 저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죠. 그저 엄마가 날 밀어낸다고, 날 원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이것이 전이 해석의 힘이다. 현재의 행동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발견하고, 무의식에 묻혀 있던 감정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것.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치유의 시작이기도 하다.
벤치를 떠나는 날
몇 주가 지나자 그녀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오늘은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처음엔 불안했지만, 이제는 제가 왜 벤치에 집착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상담이 끝날 때의 모습도 달라졌다. 더 이상 억지로 시간을 끌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간단한 인사였지만, 그 안에는 큰 변화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제 '떠남'이 '버려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석가는 다음 주에도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릴 것이고, 그것은 어린 시절의 엄마와는 다른 안정적인 관계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더 이상 외부의 대상(벤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내면에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전이한다
벤치 이야기가 특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전이를 경험한다.
직장에서 상사를 대할 때 느끼는 불편함. 그것은 어쩌면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연인에게 느끼는 불안과 집착. 그것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만든 패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운 음식에 집착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엄마가 끓여주던 김치찌개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향수 냄새만 맡으면 눈물이 난다.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오히려 불안해한다. 칭찬 뒤에는 늘 비판이 따라왔던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전이다. 과거가 현재로 침투하는 순간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전이를 알아차리는 첫걸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 나는 이 사람 앞에서만 작아질까?" "왜 이런 상황에서만 과도하게 반응할까?" "왜 늘 비슷한 사람에게 끌릴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할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두 번째는 연결하는 것이다.
현재의 감정과 과거의 경험을 연결해보는 것. 지금 느끼는 불안이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과 닮아있는지, 지금 보이는 패턴이 과거의 어떤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세 번째는 분리하는 것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이 간단한 문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는가?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모두의 벤치
런던의 공원 벤치에서 혼자 밥을 먹던 여성. 그녀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벤치'가 있다. 그것이 특정한 장소일 수도, 특정한 사람일 수도, 특정한 행동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벤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전이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관계를 맺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며,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과거의 포로가 될 뿐이다.
당신의 벤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벤치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당신도 누군가에게 과거의 그림자를 투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바로 자유의 시작이니까.
과거는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우리가 그것을 모를 때만 그렇다.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마침내 현재를 살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전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이 글은 조안 시밍턴 & 네빌 시밍턴의 『윌프레드 비온 입문』(임말희 역)에 수록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