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텔레파시적 전갈

by 홍종민

강의실에서 시작된 의문


박청화 선생의 강의실은 늘 독특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사주명리학을 가르치는 그의 수업은 단순한 운명론을 넘어 인간 존재의 심층을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승사자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학생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나 역시 그저 흥미로운 민담 정도로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 곁에는 한 달 전부터 저승사자가 서성입니다. 그리고 협상이 시작되죠.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간청에 저승사자는 때로 자비를 베풉니다."

당시의 나는 이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며 들었다. 하지만 몇 년 후,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내가 곧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통해 알게 될 일종의 **'텔레파시적 전갈'**이었다.


프로이트의 고민: 과학자의 딜레마


1920년대 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진료실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각자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프로이트는 자신의 과학적 세계관을 흔드는 이상한 보고들을 접하게 되었다.

"박사님, 제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의 일입니다. 저는 파리에 있었고 어머니는 빈에 계셨죠. 그런데 새벽 3시,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있거라, 내 아들아.' 다음날 전보를 받았는데, 정확히 그 시각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더군요."

또 다른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 딸이 출산하던 날, 저는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출장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정확히 그 시각에 손자가 태어났더군요."

프로이트는 이러한 사례들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명확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격한 과학자였던 그는 큰 고민에 빠졌다.


텔레파시적 전갈의 탄생


프로이트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오늘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과 마주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사이에 일어나는 이 신비로운 소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여 전해지는 이 메시지들을..."

고민 끝에 프로이트는 이러한 현상을 **'텔레파시적 전갈(Telepathische Botschaft)'**이라고 명명했다. 독일어로 '전갈'을 의미하는 'Botschaft'는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 중요한 소식, 특별한 전언을 의미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과학이 더 발전하면, 이 미스터리도 해명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그저 관찰하고 기록할 뿐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양자물리학의 발전은 더 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있을 뿐이다.


융의 도전: 동시성 원리의 탄생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칼 구스타프 융은 스승보다 더 과감했다. 그는 이러한 신비 현상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융 자신도 놀라운 경험을 했다. 1949년 어느 날 밤, 그는 꿈속에서 돌아가신 이모를 만났다. 꿈속의 이모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칼, 이제 떠날 시간이야. 너를 축복한다."

꿈에서 깬 융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15분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다. 사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새벽 2시 15분에..."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융은 **'동시성(Synchronicity)'**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들이 존재한다. 이는 우주가 단순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의미로 연결된 하나의 전체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저승사자: 죽음을 협상하는 존재


박청화 선생의 강의로 돌아가보자. 그는 저승사자론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저승사자는 단순히 생명을 거두러 오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망자와 협상을 합니다. 특히 이승에 강한 미련이 있는 사람들과는 더욱 그렇죠."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나나요?"

박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사례를 말씀드리죠. 제 친구의 아버지가 폐암 말기였습니다. 의사들은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강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분은 가족들을 불러 모으고 각자에게 필요한 말을 전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조리 있게 말이죠. 그리고 3일 후, 미국에서 급히 귀국한 막내딸이 병실 문을 열고 '아빠!'라고 외치는 순간, 평화롭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3일


박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5년 전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할아버지는 87세의 나이로 병상에 누워계셨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었고,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뜨시며 말씀하셨다.

"밥 좀 줘라."

놀란 가족들이 죽을 가져다 드렸더니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는 가족들을 한 명씩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글 쓰는 재주가 있으니 그 길로 가거라. 돈이 되지 않더라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당시 회사원이었던 나는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겼다.

할아버지는 3일 동안 놀라울 정도로 정정하셨다. 심지어 화투도 치시고, 좋아하시던 막걸리도 한 잔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모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구나."

그날 밤, 할아버지는 평화롭게 잠드신 것처럼 세상을 떠나셨다.


회광반조: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빛


이러한 현상을 한의학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부른다. 꺼져가는 촛불이 마지막 순간에 가장 밝게 타오르는 것처럼,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일시적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기력이 회복되는 현상이다.

조용헌은 『사주명리학 이야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회광반조는 단순한 의학적 현상이 아닙니다. 이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전,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시간입니다."

실제로 많은 의료진들이 이 현상을 목격한다.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환자가 갑자기 깨어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수백 번은 봤어요. 환자분들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갑자기 좋아지시는 거예요. 경험이 쌓이니 이제는 그 신호를 알아챌 수 있게 됐죠."


천장에서 바라본 나: 임사체험의 증언들


정현채 교수의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는 더욱 놀라운 사례들이 소개된다.

한 40대 남성은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심폐소생술을 받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몸을 떠나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제 몸이 침대에 누워있고, 의사들이 제 가슴을 압박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특히 한 간호사가 제 지갑을 빼서 서랍 두 번째 칸에 넣는 것까지 봤죠."

놀라운 것은 그가 깨어난 후 이 사실을 정확히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지갑은 서랍 두 번째 칸에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수술 중 심정지를 경험했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했다.

"갑자기 통증이 사라지고 무척 평화로웠어요. 제 몸 위로 떠올라 수술실 전체가 한눈에 보였죠. 심지어 옆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 볼 수 있었어요."

정현채 교수는 이러한 임사체험이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뇌가 정지한 상태에서 이런 선명한 지각이 가능하다는 것은 의식이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양자물리학이 던지는 새로운 가능성


현대 양자물리학은 프로이트가 미뤄두었던 문제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은 서로 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조차 "으스스한 원격작용"이라며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이 현상은 이제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의식도 양자적 특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텔레파시적 소통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스튜어트 해머로프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의식은 뇌의 미세소관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식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죠."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순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평생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추구했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유일하게 아이패드에 저장해 읽었던 책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어느 요기의 자서전』이었다.

이 책은 인도의 영적 전통과 환생, 그리고 의식의 불멸성에 대해 다룬다. 물질주의자로 보였던 잡스가 왜 이 책에 매료되었을까?

2011년 10월 5일, 잡스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의 여동생 모나 심슨은 추도사에서 그의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스티브는 마지막에 세 번 'OH WOW. OH WOW. OH WOW'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평생 혁신을 추구했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마주한 가장 큰 혁신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모두가 아는 비밀


사실 텔레파시적 전갈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다.

갑자기 오랜 친구가 생각나 전화했더니 "너 생각하고 있었어"라는 대답을 듣거나, 엄마가 아프다는 예감에 전화했더니 정말로 병원에 계셨던 경험. 이 모든 것이 작은 텔레파시적 전갈이다.

특히 가족 간에는 이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아이가 다쳤을 때 엄마가 가슴이 철렁하거나, 부모님이 위험에 처했을 때 자녀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죽음, 그 너머의 소통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이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들은 너무나 많다.

임종을 앞둔 이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한 호스피스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환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일관되고 평화로운 이 현상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그들은 정말로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과학과 신비 사이에서


프로이트가 텔레파시적 전갈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적 설명을 미뤄둔 것처럼, 우리도 아직 이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더 큰 진실이 있을 수 있다.

현대 의학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미국의 여러 대학병원에서는 임사체험 연구 센터를 설립하고, 죽음과 의식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버지니아 대학의 브루스 그레이슨 박사는 40년간 임사체험을 연구하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의식과 뇌의 관계는 재고되어야 합니다. 의식은 뇌가 만들어내는 부산물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무언가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얇은 경계


박청화 선생의 저승사자론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저승사자가 한 달 전부터 서성인다는 것은 죽음이 갑작스러운 단절이 아니라 점진적인 이행 과정임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의 임종 연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많은 환자들이 죽음을 며칠 또는 몇 주 전부터 예감한다. 그들은 "곧 떠날 것 같다"고 말하거나, 여행 준비를 하는 꿈을 꾼다.

한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꿈을 꿨어요. 선장이 와서 '곧 출항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메시지의 의미

죽음을 앞둔 이들이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들은 때로 암호 같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명확하기도 하다.

"엄마가 부른다" "아름다운 정원이 보여"
"음악 소리가 들려" "빛이 보여"

이런 말들을 단순한 환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일관성이 있다. 문화와 종교를 초월해 비슷한 경험들이 보고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텔레파시적 전갈을 받는 법


만약 사랑하는 사람과의 텔레파시적 소통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신호를 받을 수 있을까?

첫째, 고요함이 필요하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는 미세한 신호를 감지하기 어렵다. 명상이나 산책을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때, 우리는 더 민감해질 수 있다.

둘째, 직관을 신뢰해야 한다. 갑자기 누군가가 떠오르거나, 이유 없는 불안감이 들 때,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귀 기울여야 한다.

셋째, 꿈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텔레파시적 소통이 꿈을 통해 일어난다. 특히 생생하고 의미 있는 꿈은 메시지일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이해의 지평


프로이트가 텔레파시적 전갈을 인정하면서도 설명을 미뤄둔 지 100년이 지났다. 그동안 과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의식의 본질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이해에 다가가고 있다. 양자물리학, 신경과학, 의식 연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어나고 있다.

어쩌면 프로이트가 기다렸던 그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텔레파시적 전갈이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날 말이다.


에필로그: 연결된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가끔 할아버지의 존재를 느낀다. 글을 쓰다 막힐 때면 할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 그렇게 쓰는 거야."

이것이 단순한 상상일까, 아니면 정말로 할아버지가 보내는 텔레파시적 전갈일까? 나는 그 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은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끈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때로는 예감으로,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앎으로.

박청화 선생의 저승사자론, 프로이트의 텔레파시적 전갈, 융의 동시성, 그리고 현대 과학이 발견하고 있는 의식의 신비.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진실을 가리킨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그 너머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측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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