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 여성이 내 상담실을 찾았다.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사귀던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흔들린다고 한다. 손을 떨며 티슈를 움켜쥐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안끼리 인사도 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고 나니까 모든 게 흔들려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게 우리 시대 사람들의 현실이다. 결혼 직전에 옛사랑과 다시 만나는 일 말이다. 이런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랑인지 향수인지 구분도 안 되는 상태에서 말이다.
내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 상당수가 이런 문제로 온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그리워한다. 과거의 누군가가 계속 마음을 흔든다. 그게 팩트다.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이유섭 교수의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에서 분석한 『빨간 모자 꼬마아가씨』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당부를 뒤로하고 위험한 숲으로 향하는 그 소녀처럼, 우리는 모두 안전한 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 과정에서 늑대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늑대가 진짜 늑대인지 구원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다. 위험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자꾸만 그쪽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왜 그럴까?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걸까?
어른이 되려는 마음의 몸부림
샤를 페로가 처음 정리하고 그림 형제가 재화한 『빨간 모자』 동화를 아는가?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 말이다. 어린 소녀가 할머니 댁에 심부름을 간다. 어머니는 딴 데 한눈팔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소녀는 숲에서 늑대를 만나고 꽃에 정신이 팔린다.
그녀의 이야기가 바로 그 빨간 모자 소녀와 똑같았다. 안전한 길을 벗어나 위험한 유혹에 빠져드는 모습 말이다.
프로이드는 이런 현상을 전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의 관계 패턴이 현재에서 고스란히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마치 과거의 영화가 현재 스크린에서 다시 상영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 남자를 처음 만났다.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런데 친구들의 방해로 헤어졌다. 오해가 쌓이고 마음이 어긋났다.
"그때 정말 아팠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머니의 집에서 할머니의 집으로. 안전한 곳에서 위험한 곳으로. 그게 성장의 필연적 과정이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관문인 것이다.
위니코트는 이를 참자아와 거짓자아의 문제로 설명했다. 참자아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고, 거짓자아란 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가짜 모습을 말한다. 마치 가면을 쓰고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에게 현재의 약혼자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반면 첫사랑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 둘 사이에서 마음이 갈라진 것이다.
"처음 사랑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는 느낌이 달라요."
맞다. 첫사랑은 특별하다. 빨간 모자가 월경과 성의 상징인 것처럼 첫사랑은 어른이 되는 관문이다. 순수했던 소녀 시절을 끝내고 복잡한 어른 세계로 이끄는 늑대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늑대가 진짜 구원자인지 파괴자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려서는 알 수 없다.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녀는 몇 년 전 다른 사람을 만나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서로의 가족도 만났고 결혼 준비도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런데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자 모든 게 흔들렸다.
"그동안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친구들이 우리 사이를 방해했다는 것도요. 그래서 다시 가까워졌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당연한 일이라고? 정말 그럴까? 라캉이 말한 주체의 분열이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 안에는 두 명의 내가 있다. 하나는 안전을 추구하는 나, 다른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나다. 이 둘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있다. 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개념도 그중 하나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이 서로 대화하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녀 안에서도 이런 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안전함을 추구하는 현실적인 나와 열정을 갈망하는 낭만적인 나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상담실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결혼을 앞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람, 안정적인 연애를 하면서 마음이 딴 곳에 있는 사람, 가정을 꾸리고도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남들이 좋다는 것, 안전한 것만 추구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마음은 모르게 된 것이다.
마음이 보내는 위험 신호
그녀의 무의식은 계속 신호를 보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 그 남자 생각이 났다. 꿈에서도 고등학교 시절이 나왔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잠이 안 왔다.
"웨딩드레스를 고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행복해야 하는데..."
클라인이 말한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그 사람과 하나가 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말한다. 그녀는 약혼자에게 안정감을 투사했고, 첫사랑에게는 열정을 투사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둘이 모두 진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약혼자도 완전한 안정함을 줄 수 없고, 첫사랑도 완전한 열정을 줄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환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왜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프로이드의 반복 강박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되풀이하려는 충동을 말한다.
그녀에게 결혼은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또다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무의식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온 것이다. 마치 미완성된 숙제를 끝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이런 경험을 한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갑자기 중학교 친구가 보고 싶어지거나, 취업을 앞두고 대학 시절 연인을 그리워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위니코트의 과도기적 대상 개념도 여기에 적용된다. 어린아이가 엄마와 분리될 때 담요나 인형 같은 것에 의존하는 것처럼, 어른도 중요한 변화의 순간에 과거의 안전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첫사랑은 바로 그런 과도기적 대상이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의존할 수 있는 무언가였던 것이다.
"그 사람과 있으면 예전의 제가 되는 것 같아요. 걱정 없고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바로 그거다. 그녀가 찾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때의 자신이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소녀 시절의 자신 말이다. 결혼을 앞두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욱 그 시절이 그리워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거꾸로 갈 수 없다. 아무리 과거를 그리워해도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를 제대로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융이 말한 개성화 과정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를 통합해서 온전한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일까? 안전한 선택인가, 위험한 선택인가? 그녀는 계속 이 질문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정답은 따로 있었다.
현실이라는 사냥꾼
빨간 모자 동화에서 사냥꾼이 등장한다. 늑대의 배를 갈라 소녀와 할머니를 구해내는 현실의 구원자다. 그는 환상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다. 냉정한 현실 그 자체다.
"선생님,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 모르겠어요."
현실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첫사랑의 달콤함 뒤에 숨은 진실을 말이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히 사실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그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금지된 것의 유혹에 빠진 것인가? 결혼을 앞둔 여자라서 더 매력적인 건 아닌가? 이런 질문들이 필요했다.
클라인이 말한 우울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성숙한 상태를 말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첫사랑도 완벽하지 않고 약혼자도 완벽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다. 이것을 인정해야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3개월간 상담을 진행했다.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도왔다.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벗겨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연락을 해온 것은 그녀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었던 것이다.
"이제 알겠어요. 제가 찾던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때의 제 모습이었어요.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 말이에요."
맞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의 우리 자신이다. 잃어버린 순수함, 잃어버린 열정, 잃어버린 꿈들을 그 사람을 통해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이 가진 성숙함과 지혜를 인정하는 것이다.
위니코트의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혼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을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이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결국 그녀는 약혼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부모의 기대나 사회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게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늑대의 유혹을 이겨내고 현실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 말이다. 빨간 모자 소녀가 마지막에 늑대를 물리치고 진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6개월 후 그녀에게서 청첩장이 왔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정말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메시지도 함께 있었다.
그게 상담의 진정한 목표다.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 남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빨간 모자가 있다.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신호 말이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말고 용기 있게 받아들이기를.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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