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잊을까?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

by 홍종민

왜 자꾸 잊을까?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


온라인 커뮤니티에 "건망증 때문에 미치겠다"는 글들이 넘쳐난다. 30대부터 50대까지, 너나없이 같은 고민이다. 그토록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왜 이럴까?

내 상담실을 찾는 40대 후반 주부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살림 잘하고 아이들 뒷바라지 완벽하게 해내지만, 속은 구멍 뚫린 바구니 같다고 말한다. "가스레인지에 음식 올려두고 깜빡해서 태우는 일이 일주일에 세 번은 된다"고 하소연한다.

이유섭 교수의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에서 말한 것처럼, 건망증은 단순한 기억력 문제가 아니다. 억압된 무의식이 현실로 스며 나오는 신호다. 그게 요즘 사람들의 현실이다.

피부로 실감한다.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진짜 자신 말이다.


진짜 나는 어디 갔을까


"또 태웠어요. 찌개를 또 태웠다고요."


지난주 상담실에서 만난 김 씨의 첫마디였다. 47세, 두 아이의 엄마. 남편은 회사원, 본인은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언제부터 그랬어요?"

"한 2년 전부터요. 처음엔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패턴이 보였다. 건망증이 시작된 시점과 막내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시점이 일치했다. 우연일까?

프로이드가 말한 억압이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을 마음 깊숙이 밀어넣는 방어 장치다. 마치 쓰레기통 뚜껑을 꽉 눌러 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매일 억누른다. "괜찮다"고, "참을 만하다"고, "이 정도쯤이야"라고 말하면서.

김 씨도 마찬가지였다. 20년간 오직 가족을 위해 살았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맞다.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갑자기 허전했어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바로 그거다. 아이들이 손을 떠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엄마"라는 역할에만 매달려 살았는데, 그 역할이 흐려지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또 다른 내담자인 박 씨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그녀는 자꾸만 중요한 물건들을 잃어버렸다. 결혼반지, 아이 사진이 든 지갑, 어머니 유품인 목걸이까지.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그녀가 잃어버린 건 물건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이었다. 결혼 후 15년간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살았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가고 싶은 곳을 포기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참았다.

위니코트가 말한 거짓자아란 환경의 요구에 맞춰 만든 가짜 모습이다.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가 되려고 애썼지만 정작 진짜 자신은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렇게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건망증을 겪는다. 마음이 기억을 거부하는 거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저항이 건망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상담실에서 보면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모두 자신의 욕구를 오래 억누르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저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오래 남을 위해 살다 보니까."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안다. 이 사람의 건망증이 언제쯤 나아질지를.


마음이 전하는 편지


무의식은 참 영리하다. 직접 말할 수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건망증도 그 중 하나다.

라캉이 말한 주체의 분열이란 우리 안에 두 명의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의식적인 나는 "괜찮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인 나는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마치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두 개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건망증에는 모두 패턴이 있다. 아무거나 다 잊어버리는 게 아니다. 선택적으로 잊어버린다.

한 직장 여성은 회사 회의 시간은 절대 잊지 않으면서 친구들과의 약속은 자주 잊어버렸다. 분석해보니 그녀는 인간관계에 지쳐있었다. 직장에서도 눈치를 보고, 사적인 만남에서도 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견디기 어려웠던 거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이젠 스트레스예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녀의 건망증은 무의식의 거부 신호였다.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살기 싫다"는 마음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다른 남성의 경우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은 매년 잊어버리면서 축구 경기 일정은 완벽하게 기억했다.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결혼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거부하고 있는 걸까?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꿈에도 특징이 있다. 김 씨는 자주 길을 잃는 꿈을 꿨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계속 헤매는 꿈이요. 깨고 나면 너무 불안해요."


그 꿈은 그녀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컸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 말이다.

박 씨는 자꾸 집이 무너지는 꿈을 꿨다. "제가 살던 집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무너져요. 그런데 저는 도망가지 못하고 거기 서 있어요."

집은 자아의 상징이다. 집이 무너진다는 건 자아가 붕괴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도망가지 못한다는 건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왜 이런 식으로 살고 있을까?"


무의식이 던지는 질문이다. 건망증을 통해 "이대로 살면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건망증에서 시작해서 두통, 불면증, 심하면 우울증까지 갈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항복선언을 하는 거다.

하지만 그 신호에 귀 기울이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무의식이 던지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는 거다.


건망증에서 벗어나는 길


상담이 진행되면서 김 씨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상해요. 요리할 때 타이머를 안 맞춰도 안 태워요. 예전 같으면 분명 태웠을 텐데."


뭐가 달라진 걸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마주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고 인정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도 때로는 짜증이 나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고. 처음에는 아이들이 당황했지만, 오히려 더 진솔한 관계가 됐다고 했다.


"아이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가 솔직해지니까 더 편하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건망증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 씨의 경우는 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떨렸어요. 혹시 가족이 저를 미워할까봐. 하지만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했어요."


놀랍게도 가족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남편은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했고,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그렇게 힘들어했는 줄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니에요. 때로는 아이들이 귀찮기도 하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해요."


한 내담자가 상담 후반부에 한 말이다. 이 고백 이후 그녀의 건망증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완벽함은 환상이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유섭 교수가 말했듯이, 건망증은 억압된 마음의 외침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무의식의 절규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귀 기울여 들어보자.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답이 안 나올 수도 있다. 너무 오래 자신을 외면하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계속 물어보다 보면 작은 목소리가 들릴 거다. 진짜 자신의 목소리 말이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 건망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더 이상 자신을 억압할 이유가 없어지니까.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기억도 제자리를 찾는다.

당신의 건망증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그 답을 찾는 순간, 비로소 진짜 자신과 만날 수 있다. 그게 마음의 영역에선 팩트다.


참고문헌: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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