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 공황장애의 무의식적 메커니즘
정형돈이 공황장애를 고백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개그맨으로 성공한 사람이 왜? 무대 위에서 웃음을 주던 그가 방송 중에 갑자기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떨리며 죽을 것만 같은 극도의 불안이 몇 분간 지속됐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할리우드에서도 엠마 스톤, 라이언 레이놀즈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공황장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왜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는 걸까?
내 상담실을 찾는 30대 후반 직장인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지만 속은 공허하다. 최근 찾아온 한 남성도 클라이언트 프레젠테이션 중에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인다고 했다.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히며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발표를 이어가야 했고, 그 이중적 상황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저도 회사에서, 가정에서 계속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왔어요. 이제는 진짜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그의 말에는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버둥거리며 SOS를 치고 있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절망적인 신호인 것이다. 그게 요즘 사람들의 현실이다.
진짜 나는 어디 갔을까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의 성장 과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음이 드러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여겨왔다. 특히 8세 때의 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추상화를 그렸는데, 선생님이 "이게 뭔지 알 수 없다.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꽃을 그려라"며 그의 그림을 찢어버린 일이 있었다. 집에 와서 이 일을 부모에게 말했을 때도 "선생님 말씀이 맞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도널드 위니코트가 『놀이와 현실』에서 설명한 거짓자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짓자아란 환경의 요구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가면 같은 것으로, 진정한 내면인 참자아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그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마치 추위를 피하려고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데, 그 외투가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무의식 깊숙이 숨기고, 대신 타인이 원하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연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억압이 작동한 것이었다. 억압이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을 마음 깊숙이 밀어넣는 마음의 방어 장치다. 마치 지하실에 원하지 않는 물건들을 쌓아두는 것처럼 말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이 패턴은 계속되었다. 그는 회사에서 본명이 아닌 영어 이름 '댄'을 사용했다. "댄이 받는 스트레스는 진짜 저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지만, 이는 정혜신이 언급한 명품 매장 직원 '마이클'의 사례와 놀랍도록 유사했다. 마이클도 업무 중 받는 무시와 모욕을 본래의 '나'가 아닌 '마이클'이 받는 것으로 간주했지만, 결국 가슴을 움켜쥐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정혜신의 분석처럼, 그는 스타가 "대중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취향에, 직장에서는 동료들의 기대에 자신을 맞춰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스타가 온전히 '너의 욕망 그 자체'가 되는 순간에만 안전함을 느끼듯, 그 역시 그런 방식으로 훈련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제가 원하는 게 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의 말에서 자기성이 소거된 삶의 패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거울을 들여다봐야 했다.
멜라니 클라인의 대상관계 이론으로 보면, 그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투사적 동일시란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그 사람과 하나되려는 심리 작용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투사하고, 동시에 타인의 기대와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패턴을 반복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주체의 분열 상태에 있었다. 주체의 분열이란 우리 안에 의식적인 '나'와 무의식적인 '나' 사이에 갈라짐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마치 하나의 몸에 서로 다른 두 개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공한 직장인인 의식적 자아와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무의식적 자아 사이의 분열이 심해질수록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증상이 가장 심해지는 때는 프레젠테이션처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혜신의 분석에 따르면, 스타가 '나'를 주장하는 순간 "스타의 자격이 몰수당한다"는 두려움을 경험하는 것처럼, 그 역시 진정한 자기 표현의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에게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였던 것이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들
상담이 깊어지면서 그의 무의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의 꿈이었다. 그는 자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자신"이 등장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항상 관객들이 원하는 완벽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가면이 벗겨지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라캉에 따르면, 꿈은 기표들이 자유롭게 결합하는 공간이다. 기표란 말이나 이미지의 형태적 측면을 뜻하는데, 꿈에서는 이런 기표들이 은유와 환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은유란 다른 것으로 대신 표현하는 것이고, 환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꿈에서 "가면"과 "연기"라는 기표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꿈에서 가면이 벗겨질 때 느끼는 극도의 수치심과 공포였다. 라캉이 지적했듯이, 가장 강력하게 기피하는 장면에 역설적으로 가장 큰 욕망이 숨어 있다. 그가 두려워하는 "진짜 자신의 노출"이야말로 그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꿈은 그에게 "너는 정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고 있었다.
상담실에서도 전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이란 어린 시절 관계 패턴을 현재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현상이다. 그는 나에게도 "상담사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보였다. 내가 질문을 하면 먼저 내 표정을 살피고, 내가 듣고 싶어 할 만한 답을 하려고 애썼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의 얼굴색을 살피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패턴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왔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허감 역시 반복되고 있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반복 강박이라고 부른다. 반복 강박이란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계속 되풀이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이다. 마치 상처를 계속 건드리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로 나누어 인식했다. 이는 클라인이 말한 편집-분열 자리의 특징이었다. 편집-분열 자리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극단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초기 발달 단계다.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좋은 대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나쁜 대상'으로 분류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이런 패턴이 지속되면서 그는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소모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그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클라인이 말한 박해불안이 심했던 것이다. 박해불안이란 어린 시절 나쁜 대상으로부터 공격받을 것이라는 원시적 불안이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면 타인들이 자신을 거부하거나 공격할 것이라는 무의식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불안은 어린 시절 자신의 욕구를 표현했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거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몸도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동양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심장과 신장의 기운이 심하게 불균형 상태에 있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자기 억압으로 인해 정신 활동을 주관하는 심장 기능과 선천적 생명력을 저장하는 신장 기능이 모두 약해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갑작스런 에너지의 역류가 일어나기 쉬운데, 이것이 공황발작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었다.
참자아를 향한 여정
센터링의 전환점은 상담 6개월 차에 찾아왔다. 그가 처음으로 상담실에서 진짜 감정을 표현한 순간이었다. "왜 저는 항상 남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야 하죠? 정말 지겨워요!"라고 소리치며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손이 떨렸지만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억압되었던 진정한 감정이 처음으로 의식 표면으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위니코트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순간이야말로 참자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분노를 표현한 후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지하실에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처음으로 햇빛을 본 것이었다.
이후 센터링은 그의 진정한 욕구와 감정들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어린 시절 정말 좋아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 참자아와 거짓자아를 구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어린 시절 추상화에 대한 관심이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 갤러리에 가고 싶다는 욕구, 창작에 대한 열망 등이 거짓자아 밑에 억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견들은 그에게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보물을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센터링 과정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탐색하기 시작하면서 공황발작의 빈도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정혜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는 말의 역설적 증명이었다. 내 삶이 나와 가까워질수록 증상은 호전되었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하지만 회복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진정한 자기 표현을 시도할 때마다 여전히 불안을 느꼈다. 회사에서 자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동료들의 반응이 예전과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전보다 고집이 세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클라인의 우울 자리 개념으로 보면, 이는 중요한 발달적 성취였다. 우울 자리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성숙한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완전히 좋지도, 완전히 나쁘지도 않은 복합적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위니코트가 강조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도 서서히 발달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혼자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능력이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주말에 현대미술 갤러리를 방문하거나 창작 관련 책을 읽는 등 자신만의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개인 창작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승인받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아니라,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거든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기의 흐름도 점차 센터링을 찾아가고 있었다. 억압되었던 내적 에너지가 서서히 순환하기 시작하면서, 외부 에너지에만 의존하던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막혔던 수도관이 뚫리면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현재 그의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공황발작의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는 제가 누군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이제는 제가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워요. 아직도 가끔 공황발작이 오지만, 그것도 제가 저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는 그가 증상을 적대시하지 않고 자신의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혜신이 말했듯이,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이었다. 그는 이제 그 급전의 의미를 이해하고 응답하기 시작했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라는 절망적 신호를 "내가 나를 찾고 있어요"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세워가는 중이다. 완전한 회복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는 이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정혜신의 통찰처럼,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그는 이제 그 매력적인 순간들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그게 진짜 센터링의 시작이다.
참고문헌: 정혜신(2018). 당신이 옳다. 서울: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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