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톰이 썸머에게 계속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답답해했다. 분명히 썸머는 "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했는데, 왜 톰은 계속 그녀를 쫓아다닐까? 그건 단순한 짝사랑이 아니었다. 무의식이 보내는 반복 신호였다. 톰은 자신도 모르게 "나를 거부할 사람"을 선택하고 있었던 거다.
내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왜 항상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만 만날까요?"라고 묻지만, 속으로는 그 고통에 중독되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렬한 감정을 통제하는 데에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공통적 경험의 하나다"(맥 윌리엄스, 2007: 54). 그게 사랑의 미스터리다.
어린 시절의 각인, 사랑의 원형이 되다
A씨는 스물여덟 살 회사원이었다. 상담실에서 처음 한 말이 이거였다. "제가 왜 항상 저를 무시하는 여자들한테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 똑똑하고 성실한 남자가 늘 차가운 여자들에게만 마음을 빼앗긴다니. 그의 어린 시절을 들어보니 답이 나왔다.
엄마는 완벽주의자였다. 100점을 받아와도 "이번엔 운이 좋았네", 99점을 받으면 "역시 네가 그 정도야"라고 했다. 프로이드가 말한 반복강박이 바로 이거다. 과거의 상처받은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재현하려는 충동.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와 같은 타입의 여자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그 순간을 다시 살면서, 이번엔 달라질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거였다.
맥 윌리엄스가 소개한 사례가 더 충격적이다. 그가 치료했던 한 남자는 "아동기에 매일 아침 부엌에서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고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쥐고 멍하니 공간을 응시하는 알코올 중독의 어머니를 보곤 했는데, 대학교 식당에서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있고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쥐고 멍하니 공간을 응시하는 한 여성과 '불가사의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맥 윌리엄스, 2007: 54)는 거였다.
이게 바로 무의식의 반복이다. 그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의 각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사랑의 원형으로 각인된 거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찾으려 해도, 무의식은 익숙한 패턴을 선택한다.
B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스물아홉 살 디자이너인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바람둥이였다. "저는 진짜 성실한 남자를 찾고 있는데, 왜 항상 이런 남자들만 만날까요?"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바람둥이였다. 어린 B양은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고, 아버지가 들어오면 "아빠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시절의 자신을 살고 있었다. 바람피는 남자를 붙잡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말이다. 무의식은 익숙한 고통을 선택한다. 새로운 사랑보다는 익숙한 상처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다. 그게 인간 마음의 아이러니다.
C씨의 이야기는 더 복잡했다. 서른한 살 엔지니어인 그는 "완벽한 여자"만 찾았다. 외모, 학벌, 직업, 성격까지 모든 게 완벽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를 만나면 자신이 초라해 보일까 봐 두려웠다. 결국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였다. 늘 바빴고, 완벽을 추구했다. 어린 C씨가 뭔가 실수를 하면 "의사 아들이 그 정도밖에 안 되니?"라고 말했다. 그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썼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에 시달렸다. 지금도 그는 완벽한 여자를 찾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여자 앞에서는 어린 시절의 초라한 자신이 되어버렸다.
무의식의 신호들, 반복되는 사랑의 패턴
상담실에서 만난 D양의 꿈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꿈속에서 늘 누군가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혼자 남겨졌다. 깨어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공허했다.
라캉이 말한 주체의 분열이 바로 이런 거다. 우리 안에는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욕망이 따로 존재한다. 의식적으로는 "이번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은 "또 나를 버릴 사람을 찾고 있다"고 속삭인다. 이 분열된 마음이 꿈에서 그대로 드러난 거였다.
그녀의 연애사를 들어보니 패턴이 뚜렷했다. 처음엔 열정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끌렸다가, 그들이 진짜 관심을 보이면 오히려 식었다. 반대로 차가운 남자들에게는 더 매달렸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건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그녀의 엄마는 조울증이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였지만, 우울할 때는 며칠씩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늘 엄마의 기분을 살폈고, 어떻게 하면 엄마가 다시 웃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 그녀가 찾는 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남자들. 그녀는 또다시 어린 시절의 자신이 되어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무의식은 과거의 미완성된 관계를 현재에서 완성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과거는 현재가 될 수 없으니까.
E씨의 이야기는 더 극단적이었다. 서른 살 회계사인 그는 "정반대" 전략을 썼다.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던 그는 의식적으로 평화주의자들만 만났다. 비폭력 운동에 참여하는 여자, 명상을 하는 여자, 채식주의자인 여자들. 모두 아버지와는 정반대 타입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들과 사귀기 시작하면 똑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처음엔 평화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숨겨진 공격성이 드러났다. 언어폭력, 정서적 학대, 때로는 물리적 폭력까지. 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무의식은 정반대를 선택해도 결국 같은 결과로 이끈다. 그게 전이의 무서운 힘이다.
전이의 덫에서 벗어나기
F씨는 서른세 살 의사였다. 상담실을 찾은 이유가 명확했다. "제가 만나는 여자들이 다 똑같아요. 처음엔 저에게 관심을 보이다가, 나중엔 다른 남자한테 가버려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섞여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연주회와 레슨으로 늘 바빴고, F씨에게 쏟을 수 있는 관심은 제한적이었다. 어린 F씨는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공부도 잘했고, 의사가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의 관심은 항상 다른 곳을 향했다.
위니코트가 말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사랑받는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만 자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연인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패닉 상태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선택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다. 한 명의 남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타입들이었다. 마치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을 확인받으려는 것처럼.
변화의 시작점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F씨가 우연히 본 브래드 피트의 인터뷰였다. 앤젤리나 졸리와의 이혼 후 그가 한 말이었다. "나는 늘 나를 구원해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사실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 말이 F씨의 가슴을 쳤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찾던 건 사랑이 아니라 구원이었다는 걸.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무조건적 사랑을 연인에게서 받으려고 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의 상처는 과거에서만 해결할 수 있으니까.
맥 윌리엄스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 있는 부모와 정반대되는 연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해소시켜 줄 해독제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이 새로운 관계에서도 무서우리만큼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맥 윌리엄스, 2007: 54). 하지만 그 깨달음이 바로 변화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F씨의 변화는 서서히 시작됐다. 자신의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였다. "아, 또 이런 타입에게 끌리고 있구나." 무의식적 선택이 의식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진짜 사랑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한 건가?"
6개월 후 그는 전혀 다른 타입의 여자와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려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았다. 평범한 간호사였고, 감정 기복도 별로 없었다. 처음엔 심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깨달았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G양의 회복 과정은 더 극적이었다. 서른한 살 변호사인 그녀는 "완벽한 남자"를 찾다가 지쳐 있었다. 키 180cm 이상, 명문대 출신, 연봉 1억 이상. 조건은 완벽했지만 만날 때마다 공허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사업가였다. 성공에 대한 강박이 심했고, G양에게도 늘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변호사가 됐지만, 정작 아버지는 "변호사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녀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과의 관계는 늘 겉도는 느낌이었다. 서로의 스펙만 확인하고, 진짜 감정은 나누지 못했다.
변화는 그녀가 동네 카페에서 만난 평범한 남자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는 처음으로 진짜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아닌, 그냥 G양으로서 말이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찾던 건 완벽한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아버지의 조건부 사랑에 길들여진 그녀는 무조건적 사랑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그 평범한 교사를 통해 처음으로 경험하게 됐다.
회복의 전환점은 언제나 자기 인식에서 시작된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을 선택하는지, 이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어린 시절의 어떤 상처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지 깨달을 때. 그때 비로소 새로운 사랑이 가능해진다.
전이는 과거의 관계를 현재로 가져오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과거에서 벗어나 진짜 현재를 살 수 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아닌,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사랑 말이다. 그게 진짜 사랑의 시작이다.
사랑의 전이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고, 그 아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상처가 아닌, 현재의 선택으로서의 사랑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사랑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그 패턴을 의식화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생긴다. 익숙한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시도해볼 것인가. 그 선택이 바로 성숙한 사랑의 출발점이다.
참고문헌: Nancy McWilliams. (2004).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A Practitioner's Guide. 권석만, 이한주, 이순희 역(2007).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서울: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