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사실 하나. 한국 대학생 85%가 열등감에 시달린다는 조사가 나왔다. 10년 새 꾸준히 늘었다. 더 충격적인 건 이들 중 60%가 "나는 비참하고 초라하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성공해 보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
내 상담실을 찾는 20대 대학생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똑똑하고 능력 있어 보이지만 속은 열등감의 늪에 빠져있다. 성적도 좋고, 외모도 괜찮은데 도대체 왜 그럴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신체를 조절할 수 없는 미숙성 때문에 기능 장애를 느끼며,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력하고 약하고 열등한 상태에 있음을 느낀다"(이유섭, 2018: 78). 고 했다. 그게 현대 자본주의가 더 부채질 한다.
어린 시절, 완벽의 주술에 걸리다
A씨는 22세 대학생이다. 첫 상담에서 그녀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SNS만 보면 괴로워요. 그런데 안 볼 수가 없어요." 인스타그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게 일상이었다.
"친구들은 다 해외여행 가고,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 먹는데... 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스며있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모두 완벽해 보였다. 완벽한 외모, 완벽한 라이프스타일, 완벽한 인간관계. 그에 비해 자신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밤에 혼자 있으면 제 인생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요. 특히 새벽 2-3시쯤이면... 정말 죽고 싶어져요." A씨는 매일 밤 우울감에 시달렸다. 침대에 누워서도 다른 사람들의 SNS를 보며 자신과 비교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프로이드가 말한 초자아가 작동하고 있었다. 초자아란 외부 명령과 금지가 내면에 뿌리내린 것이다. 부모 기대, 사회 요구, 또래 시선이 합쳐져 '완벽해야 한다'는 내적 명령을 만든다. A씨에겐 '평범하면 안 된다'는 초자아가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 실마리였다. "엄마가 항상 말했어요. '너는 특별한 아이야. 다른 애들처럼 살면 안 돼. 너는 뭔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 5살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처음엔 기분 좋았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은 족쇄가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압박이 시작됐다. "시험에서 100점 맞으면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95점만 맞아도 '왜 5점을 틀렸니?'라고 하시고요." 완벽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엄마 표정이 어린 A씨에겐 공포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때가 더 심했다. "성적표에서 제 이름이 중간쯤 있으면... 왜 이렇게 평범할까 싶었어요. 1등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죠. 동시에 저 자신이 한심했고요." 그녀에게 평범함은 곧 실패였다. 특별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과에서 1등을 못하니까...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확실해진 것 같았어요. 엄마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씨는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평범하게 생겼을까? 왜 특별한 재능이 없을까?" 자기 비난의 연속이었다. 그게 초자아의 무서운 힘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얼굴
B양은 24세 대학 4학년이다. A씨와는 정반대였다.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성취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 대학이 어딘지 아세요? SKY 중 하나예요. 토익 990점이고, 대기업 취업도 확정됐어요. 학점도 4.3이고요."
그런데 도대체 왜 상담실을 찾았을까? "사실... 매일 불안해요. 제가 가짜 같아요. 언젠가 모든 게 들통날 것 같아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친구들 앞에선 자신만만한 척하지만... 혼자 있으면 완전히 무너져요."
비온이 제시한 컨테이닝이 실패한 사례였다. 컨테이닝이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받아서 소화시켜 다시 돌려주는 과정이다. 정상적이라면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아이의 불안을 받아주고 안정감을 돌려준다. 하지만 B양의 경우 그 과정이 작동하지 않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 쌓이기만 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정말 무서워요. 내일 뭔가 실수할까 봐, 사람들이 제 진짜 모습을 알까 봐." B양은 매일 밤 불안에 떨었다. 완벽한 가면을 벗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두려움. 그게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우월감은 사실 열등감의 다른 얼굴이었다. 어려서부터 '완벽한 아이'로 불려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 학생회장... 항상 1등이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이 좋았죠. '역시 B양은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공부도, 외모도, 집안도... 모든 면에서요." 그때부터 그녀의 불안이 시작됐다.
"제가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토익도, 스펙 쌓기도... 잠자는 시간 빼고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항상 더 잘하는 사람이 있었고, 완벽에는 끝이 없었다.
마치 거울처럼 완벽한 자신과 불안한 자신이 계속 대립했다. "친구들이 제 성적을 부러워해요. 그런데 정작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싫어요. 가면을 벗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었다. "엄마가 늘 그랬어요. '너는 우리 집 자랑이야. 절대 실망시키면 안 돼. 우리 가족의 희망은 너뿐이야.'"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족의 모든 기대를 짊어진 채 살아온 그녀에게 실패는 곧 배신이었다.
"시험 때마다 죽을 것 같았어요. A+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번은 A를 받았는데... 3일 동안 밥을 못 먹었어요. 제가 가족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B양의 완벽주의는 병적 수준이었다. 99점도 실패였고, 2등도 패배였다.
경쟁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C군은 23세 공대생이다. 다른 내담자들과 달리 겉으로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제 성적이 전체 상위 5% 안에 들어요. 대학원도 좋은 곳으로 갈 예정이고, 교수님들도 저를 인정해주세요." 그런데 그의 표정에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위니코트가 말한 참자아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참자아란 사회적 기대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진정한 자기 모습을 의미한다. C군은 오직 경쟁 속에서만 자신을 정의했다. 이기고 지는 것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판단했다.
"친구들과 비교하는 게 일상이에요. 누가 더 좋은 학점을 받았는지, 누가 더 좋은 회사에 지원했는지...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에요." C군의 하루는 비교와 경쟁으로 가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들 SNS를 확인했다. 누가 뭘 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경쟁은 그에게 마약 같은 존재였다. "지면 정말 죽을 것 같고, 이기면 잠깐 기분이 좋아지지만... 또 다른 상대를 찾게 되고요. 끝이 없어요. 최근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요. 꿈속에서도 경쟁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그의 꿈은 경쟁으로 가득했다. "어제도 꿈에서 시험을 봤어요. 제가 꼴찌를 했는데...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꿈인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웠거든요." 무의식까지 경쟁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부모님이 저를 '우리 집 자랑'이라고 하세요. 친척들 모임에 가면 항상 저 자랑이에요. '우리 아들이 몇 등 했다, 어떤 상을 탔다...' 그런데 그게 부담스러워요." 가족의 자랑이 되는 건 좋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만약 제가 실패하면... 부모님이 얼마나 실망할까요? 친척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을까요?" 그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았고, 그 기대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가장 충격적인 건 그의 마지막 고백이었다. "저는... 제가 진짜 누군지 모르겠어요. 경쟁에서 이기는 저만 알죠. 1등 하는 저, 상 받는 저, 인정받는 저... 그게 아닌 저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그는 실험을 해봤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봤어요. 공부도, 과제도, 경쟁도... 그런데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뭘 해야 할지, 뭘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경쟁 사회가 만든 괴물, 그게 바로 그의 현실이었다.
허상을 깨뜨리는 용기
회복의 열쇠는 허상을 깨뜨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A씨부터 시작됐다.
6개월간의 상담 후, A씨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SNS를 모두 삭제했어요. 처음엔 정말 불안했어요. 마치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온라인 세계의 허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 삶을 보지 않으니까 비교할 일도 없어지고... 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변화는 극적이었다. 우울감이 줄어들고, 밤에도 잘 잘 수 있게 됐다.
"제가 평범해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1등이 아니어도... 저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있었다. "이제는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려고 해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제 기준으로요."
A씨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의무감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재밌어요. 특히 심리학 책들이요." 인스타그램 대신 책을, 브런치 카페 대신 동네 도서관을 선택했다. 그녀만의 새로운 세계였다.
B양의 변화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까... 오히려 더 잘하게 되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녀는 성적에만 매달리던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친구들한테 제 약한 모습도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정말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저를 무시할까 봐."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친구들이 더 편해하더라고요. '너도 그런 고민이 있구나' 하면서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고... 관계가 훨씬 깊어졌어요."
B양은 이제 A+ 대신 B+를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점수보다 제가 진짜 배우고 싶은 걸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엔 학점이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더 재밌게 공부하게 되니까 성적도 좋아지더라고요."
가장 극적인 변화는 C군에게서 나타났다. "경쟁을 멈췄어요. 아니, 완전히 멈춘 건 아니고... 적당히 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줄이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학점보다는 제가 정말 관심 있는 분야를 찾고 있어요. 로봇공학인데... 성적 때문이 아니라 정말 재밌어서 하고 있어요." C군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절박한 눈빛이 아니라, 진짜 자신을 찾은 사람의 평화로운 눈빛이었다.
"이미 받아들인 초자아가 허상이고 왜곡된 무리한 요구라면, 과감히 허상을 파괴해야 하고, 허상 파괴의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이유섭, 2018: 81). 정확히 세 사람이 한 일이었다.
배우 송혜교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더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허상을 깨뜨린 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C군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었다. "경쟁에만 매달렸을 때는 세상이 흑백논리였어요. 이기거나 지거나. 그런데 지금은... 정말 다양한 색깔이 보여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둘 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생기는 증상이다. A씨, B양, C군 모두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게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허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정.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세 사람의 변화가 그 증거다.
참고문헌: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