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화. 역전이를 두려워하는 상담자는
아마추어다

by 홍종민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불편함, 그게 정답이다.
틀립없다.

상담을 배울 때 제일 먼저 듣는 경고가 뭔지 아는가?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지 마세요."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전문적 거리를 유지하세요."

다 틀렸다. 완전히 틀렸다.

그런 식으로 하면 당신은 영원히 껍데기 상담만 하게 된다. 진짜 치료는 일어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건, 역전이를 부인하는 순간 당신은 내담자의 트라우마를 재연하는 가해자가 된다는 거다.


역전이 부인은 초기 트라우마의 반복이다


"환자가 전이 태도와 단서를 부인하는 것은 아마도 전이적 태도의 발생적 기원을 이루는 초기 경험에 대한 이해를 부인하는 것의 반복일 것이다"(바우어, 2023: 69).

이 문장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내담자만 부인하는 게 아니다. 상담자도 역전이를 부인한다. 그리고 그 순간,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진다.

한 여성 내담자를 만날 때마다 성적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겁이 났다. '이건 전문적이지 못해. 이런 감정은 없어야 해.' 그래서 억눌렀다. 더 차갑게, 더 거리를 두고 대했다.

결과? 3개월 만에 그녀는 상담을 중단했다. "선생님은 저를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아요."

나중에 깨달았다. 그 성적 긴장감은 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생존 전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유혹을 통해서만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이거다.

내가 그 역전이를 부인하고 차갑게 대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성적 호소를 못 본 척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보고도 부인했다. 그래서 그녀는 평생 학습했다. '내 진짜 욕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구나. 그래도 계속 유혹해야 해. 그게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내가 역전이를 부인하는 순간, 나는 그 패턴을 그대로 재연한 거다. 치료는커녕 트라우마를 반복시킨 셈이다.

이게 역전이 부인의 진짜 위험이다. 단순히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니다. 내담자의 가장 깊은 상처를 그대로 찌르는 거다.


상담자의 방어와 내담자의 방어는 한 쌍이다


한 동료 상담자가 고백했다. "이 내담자만 만나면 너무 졸려요. 내가 불성실한 걸까요?"

나는 물었다. "그 내담자는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하나요?"

"회사에서 얼마나 인정받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

여기서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

동료는 졸림을 '자기 문제'로 봤다. 그래서 참으려 했다. 억누르려 했다. 이게 역전이 부인이다.

그런데 졸림은 내담자의 거짓 자기(false self) 밑에 깔린 공허함을 감지한 신호였다. 내담자 본인은 그 공허를 '느끼지' 못한다. 성공 서사로 빈틈없이 덮어뒀으니까.

상담자가 졸림을 부인하고 참는 순간, 내담자의 거짓 자기도 강화된다.

왜? 내담자의 무의식이 감지하니까. '아, 이 사람도 내 공허를 보지 않으려 하는구나. 그럼 나도 계속 성공 이야기로 덮어야겠다.'

이게 방어의 공명이다. 상담자의 방어(역전이 부인)와 내담자의 방어(거짓 자기)가 서로를 강화하는 거다.

반대로 상담자가 졸림을 인정하고 활용하면? "지금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묘하게 공허함을 느끼는데, 혹시 당신도..."

그 순간 내담자의 방어가 무너진다. 누군가 처음으로 그 공허를 봐줬으니까.


투사적 동일시: 내담자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당신 안에 던진다


한 내담자가 있었다. 30대 남자, 성공한 변호사. 그런데 상담 중에 나는 계속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극도로 공손했다. 그런데도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엔 내 문제인 줄 알았다. '내가 예민한가? 인정 욕구가 강한가?'

틀렸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그의 어린 시절이었다. 엘리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늘 투명인간이었다. 성적표만 중요했지, 그의 감정은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그 무시당함의 느낌을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게 전달한 거다.

이게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다.

내담자는 자기가 느낀 무시당함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왜? 의식하지 못하니까. 너무 고통스러워서 쪼개어 버렸으니까.

대신 나로 하여금 그걸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만약 내가 그 느낌을 부인했다면? "이건 내 문제야. 전문가답지 못해" 하면서 억눌렀다면?

나는 그의 부모가 되는 거다. 그의 감정을 못 본 척하는. 그래서 그는 또다시 학습한다. '역시 내 진짜 감정은 아무도 못 봐주는구나.'

역전이를 부인하는 건 내담자의 초기 대상(부모)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거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홍종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홍종민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86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1화: 듣고 있다고 믿는 순간, 듣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