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밥을 엄마라고 착각하는 남자이야기

by 홍종민

작은 식당에서 시작된 운명


2018년 가을, 서울 변두리의 작은 식당.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 반, 식당은 한산했다. 주방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는 소리만 들렸고, Y씨는 카운터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땀에 젖은 남자가 들어왔다. 택배 유니폼을 입은 그는 허겁지겁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줌마, 된장찌개 하나요. 밥은 많이 주세요."

Y씨는 그 '밥은 많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밥을 많이 달라고 할까. 밥공기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고봉밥이었다.

A씨는 그 밥을 받아들며 순간 멈칫했다. 이렇게 밥을 많이 퍼주는 식당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밥을 퍼주는 여자의 두툼한 손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가 그렇게 밥을 퍼주었던 것 같은...

그날부터 A씨는 매일 그 식당을 찾았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멀어도 점심은 꼭 그곳에서 먹었다. Y씨는 A씨가 오는 시간을 알게 되었고, 그 시간이 되면 밥을 미리 퍼놓고 기다렸다.

"오늘은 반찬 새로 했어요. 많이 드세요."

Y씨는 A씨 앞에 반찬을 하나 더 놓으며 말했다. A씨는 고개만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 여자는 왜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밥 냄새를 찾아 헤매던 소년

A씨의 어린 시절은 늘 배고팠다.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교회로 갔다. 새벽기도, 오전예배, 오후 봉사, 저녁 전도... 하루 종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집에는 늘 성경책과 전도지만 가득했고,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엄마, 배고파요."

7살 A씨가 말했다. 어머니는 부엌을 뒤적이더니 라면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거 끓여 먹어. 엄마는 교회 가야 해."

A씨는 발받침을 놓고 올라가 위험하게 가스레인지에 라면을 끓였다. 뜨거운 물이 튀어 손등을 데이기도 했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은 늘 비어있었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A씨는 코를 킁킁거렸다. 혹시 밥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원을 마치고 밤 9시에 집에 들어서는데,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밥 냄새였다. 진짜 갓 지은 쌀밥 냄새.

A씨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고 주방으로 뛰어갔다.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돼지고기가 가득 들어간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어머, 우리 아들 왔네. 빨리 손 씻고 와. 밥 먹자."

어머니의 그 말이, 그 따뜻한 밥 한 그릇이 A씨에게는 세상 전부였다. 그날 밤 A씨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었다.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니까.

그날 이후 A씨는 현관문을 열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밥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개코'가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친구들은 놀렸다. "야, 너 진짜 개야? 왜 맨날 냄새 맡고 다녀?"

하지만 A씨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밥 냄새가 나면 오늘은 굶지 않는다는 신호였고, 어머니가 집에 있다는 증거였다.


눈칫밥을 먹던 소녀


Y씨의 상처는 더 일찍 시작되었다.

6살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가 없었다. 옷장도 비어있었고, 화장대 위의 화장품도 사라졌다. 아버지는 담배만 피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Y씨가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Y씨는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나쁜 분은 아니었지만, Y씨를 반기지는 않았다. 식구 하나 더 먹여 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밥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네 엄마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애를 버리고 가다니."

Y씨는 밥을 먹으면서도 눈치를 봤다. 너무 많이 먹으면 할머니가 싫어할 것 같아서 배가 고파도 "배불러요"라고 했다. 반찬도 젓가락으로 살짝만 집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늘 인상을 찌푸렸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 때마다 Y씨는 부끄러웠다.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에는 계란말이며 소시지며 알록달록한 반찬이 가득했지만, Y씨의 도시락에는 김치와 멸치볶음뿐이었다.

"야, 너 도시락 왜 그래? 거지야?"

한 아이가 놀렸다. Y씨는 울었다. 그날 이후로는 도시락을 들고 화장실에서 먹었다.

그런 Y씨에게 유일한 위안은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TV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Y씨는 상상했다.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엄마가 되면, 절대 내 아이는 배고프게 하지 않을 거야."

Y씨는 혼자 다짐했다. 그리고 할머니 몰래 요리책을 보며 요리를 배웠다. 처음에는 계란후라이도 제대로 못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Y씨는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거지만 했지만, 요리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주방장은 Y씨의 열정을 보고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Y씨는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요리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는 걸.


운명적인 재회, 아니 첫 만남


그렇게 상처받은 두 영혼이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A씨가 처음 Y씨의 식당에 왔을 때, Y씨는 직감했다. 이 사람도 배고픈 사람이구나. 밥을 달라고 하는 그 간절한 눈빛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래서 밥을 퍼줄 때마다 마음을 담았다. '많이 드세요. 배부르게 드세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뿐이지만...'

A씨는 그 마음을 느꼈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따뜻한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머니가 해준 그 특별한 날의 밥처럼.

어느 날, A씨는 용기를 냈다.

"저... 여기 밥이 참 맛있네요."

Y씨는 얼굴이 빨개졌다. 밥이 맛있다는 말이 왜 이렇게 기쁜지.

"그래요? 더 드릴까요?"

"아니요, 이것도 많아요. 감사합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A씨는 택배 일의 고단함을, Y씨는 식당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났을 때, A씨가 먼저 고백했다.

"저랑... 커피라도 한잔 하실래요?"

Y씨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남자와 식당 밖에서 만난다는 것이 왜 이렇게 설레는지.

"네, 좋아요."


밥으로 시작된 사랑


첫 데이트는 어색했다.

식당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던 두 사람이 카페에 앉으니 할 말이 없었다. A씨는 커피만 휘휘 저었고, Y씨는 냅킨을 계속 접었다 폈다 했다.

"저... 사실 오늘 제가 도시락을 싸왔어요."

Y씨가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A씨의 눈이 커졌다.

"저한테요?"

"네. 식당에서는 제대로 된 반찬을 못 드렸잖아요. 이건 집에서 정성껏 만든 거예요."

도시락을 여는 순간, A씨는 울컥했다. 계란말이, 잡채, 불고기, 김치... 마치 엄마가 소풍 가는 아이에게 싸주는 도시락 같았다.

A씨는 말없이 먹었다. 하지만 Y씨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지금 밥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있다는 것을.

"맛있어요?"

"네... 정말 맛있어요. 태어나서 먹어본 도시락 중에 제일 맛있어요."

그 말에 Y씨도 울컥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이렇게 소중하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두 번째 데이트 때, A씨가 물었다.

"혹시... 저랑 같이 살래요?"

너무 갑작스러운 프러포즈였다. 하지만 Y씨는 이상하게도 놀라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네."


결혼, 그리고 현실


결혼식은 소박했다.

A씨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눈물을 흘렸고, Y씨의 할머니는 "이제 네 밥은 네가 알아서 해 먹고 살아"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신혼집은 작은 투룸이었다. 하지만 Y씨에게는 궁전 같았다. 드디어 자신만의 부엌이 생긴 것이다. 매일 아침 Y씨는 정성껏 밥을 지었다. A씨가 출근하기 전에는 꼭 아침밥을 차려주었고, 도시락도 싸주었다.

"여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A씨가 미안해하며 말했지만, Y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게 좋아요. 당신이 맛있게 먹는 모습 보는 게 제일 행복해요."

그것은 진심이었다. Y씨는 A씨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필요한 사람,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 6개월은 천국 같았다. A씨는 퇴근하면서 항상 무언가를 사왔다. 빵, 과일, 아이스크림... 말은 없었지만 Y씨는 그것이 A씨 나름의 사랑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를 찾는 남자, 사랑을 확인하려는 여자

어느 날 저녁, A씨가 늦게 들어왔다.

"어디 갔다 이제 와요?"

Y씨가 물었다. A씨는 대답 없이 냉장고를 열었다.

"밥은?"

"차려놨잖아요. 기다렸는데 연락도 없이..."

"회식이 있었어."

"그럼 미리 말을 하든가. 반찬 다 식었네."

Y씨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A씨는 밥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A씨도 답답했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들과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데, 집에 가면 아내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가 교회에서 늦게 돌아올 때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처럼.

Y씨는 점점 불안해졌다. A씨가 자신이 해준 밥을 예전처럼 맛있게 먹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먹는 것 같았다.

"오늘 반찬 어때요?"

"응, 괜찮아."

"괜찮아요? 그게 끝이에요?"

"맛있어. 왜 그래?"

A씨의 무뚝뚝한 대답에 Y씨는 상처받았다. 자신이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만든 음식인데, '괜찮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다니.

숨겨진 상처가 만든 갈등

어느 날, Y씨는 A씨의 가방을 정리하다가 영양제 뭉치를 발견했다.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관절 영양제... 적어도 열 가지는 넘어 보였다. Y씨는 화가 났다. 자신은 식당 일로 손이 퉁퉁 붓고 허리가 아픈데, 남편은 자기 건강만 챙기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영양제."

"나는? 나는 이런 거 하나도 없는데?"

"필요하면 사."

A씨의 무심한 대답에 Y씨는 폭발했다.

"당신은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나는 당신 밥 해주느라 새벽부터 일어나는데, 당신은 나한테 관심도 없잖아!"

A씨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던 오렌지 봉지를 Y씨에게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Y씨는 오렌지를 보며 울었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오렌지가 A씨가 자신을 위해 산 것이라는 걸. 하지만 왜 말로 하지 못할까? "당신 생각해서 샀어"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밖으로 나간 A씨도 답답했다. 아내를 위해 오렌지를 샀는데, 왜 자신은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도 그랬다.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늘 교회에 있었고, 자신은 늘 혼자였다.


반복되는 패턴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갈등은 깊어졌다.

Y씨는 A씨가 집에 오는 시간, 누구를 만나는지, 뭘 먹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려 했다. A씨가 조금만 늦어도 불안했고, 연락이 없으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잔소리야?"

A씨가 짜증을 냈다.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나 애가 아니야."

"애 아니면 왜 밥 타령이에요? 맨날 밥, 밥, 밥..."

순간 A씨의 표정이 굳었다. Y씨도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날 밤, A씨는 밥을 먹지 않았다. Y씨가 차려준 밥상을 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Y씨는 혼자 식탁에 앉아 울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분명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상담실에서 만난 진실

견디다 못한 Y씨가 부부 상담을 제안했다.

"우리 상담이라도 받아봐요."

"상담? 그런 게 뭐 필요해?"

"이대로는 안 돼요. 우리 둘 다 불행해요."

A씨는 마지못해 따라갔다. 상담사는 50대 여성이었다. 따뜻한 눈빛이 왠지 마음을 편하게 했다.

"두 분이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Y씨가 먼저 말했다. 식당에서 A씨를 만난 이야기, 그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다는 이야기.

"그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이 사람이 제 밥을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담사가 A씨를 바라봤다.

"A씨는 어떠셨어요?"

"저는... 그냥 밥이 맛있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A씨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같았어요."

"어머니요?"

"네. 제 어머니는... 늘 교회에 계셨어요. 집에 오면 밥이 없었죠.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밥을 해주실 때가 있었어요. 그때 그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A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Y씨는 처음 보는 남편의 눈물에 당황했다.

상담사가 Y씨에게 물었다.

"Y씨의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저는... 어머니가 없었어요. 6살 때 떠나셨어요."

"그래서 밥을 해주는 것이 중요했군요."

"네.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면, 제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어요. 버려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상담실에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마주했다.


밥에 숨겨진 진짜 의미


상담사가 조용히 말했다.

"A씨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네요. 그것은 어머니였고, 사랑이었고, 존재의 확인이었어요."

A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밥 냄새를 맡으면... 엄마가 있는 것 같았어요. 저를 생각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Y씨의 밥이 특별했던 거군요."

"네. 처음 식당에서 밥을 받았을 때, 정말 오랜만에 그 느낌을 받았어요. 누군가 저를 위해 밥을 퍼주는 그 느낌..."

Y씨가 울기 시작했다.

"저도 그랬어요. 이 사람이 제 밥을 맛있게 먹어주니까, 제가 살아있는 것 같았어요.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상담사가 말했다.

"두 분 모두 어린 시절의 결핍을 서로를 통해 채우려 했네요. 하지만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A씨는 자신이 왜 밥에 집착하는지, 왜 감정 표현을 못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관심과 사랑을 아내의 밥을 통해 채우려 했던 것이다.

Y씨도 자신이 왜 그토록 확인하고 집착했는지 알게 되었다. 6살에 떠난 어머니처럼 A씨도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미안해요."

A씨가 먼저 사과했다.

"당신이 해준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도, 제대로 표현 못했어요."

"저도 미안해요. 당신이 힘든 걸 이해하지 못하고 제 불안만 쏟아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았다. 처음으로 진짜 포옹을 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시작


상담사는 두 사람에게 숙제를 줬다.

Y씨에게는: "A씨에게 밥을 해줄 때,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가끔은 함께 만들어 먹는 것도 좋겠어요."

A씨에게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세요. '맛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말들을요."

처음에는 어색했다. A씨가 "맛있어"라고 말하면 Y씨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일요일 아침, 두 사람은 함께 부엌에 섰다.

"오늘은 같이 해요."

Y씨가 제안했다. A씨는 서툴게 야채를 썰었다. 파가 굵게 썰어졌지만 Y씨는 뭐라 하지 않았다.

"이거 맞아?"

"완벽해요."

둘이 함께 만든 된장찌개는 특별할 것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최고의 요리였다.


치유의 과정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법을 배웠다.

A씨가 늦을 때는 미리 연락을 했다. "오늘 회식이 있어. 먼저 먹고 있어." 단순한 문자지만 Y씨에게는 큰 안심이 되었다.

Y씨도 변했다. A씨가 밥을 남기면 예전처럼 서운해하지 않았다. 대신 "배불러?" 하고 가볍게 물었다.

가장 큰 변화는 A씨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늘 반찬 진짜 맛있다."

"어떤 게 제일 맛있어요?"

"이 계란말이.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어?"

"비밀이에요."

두 사람이 웃었다. 작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다.

아직도 가끔은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가끔 A씨는 무뚝뚝해지고, Y씨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를 이해한다. A씨의 무뚝뚝함이 무관심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방어기제라는 것을. Y씨의 불안이 집착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의 신호라는 것을.

어느 날 저녁, A씨가 장을 보고 왔다.

"이거."

A씨가 Y씨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핸드크림이었다.

"손 많이 거칠어진 것 같아서."

Y씨는 울컥했다. A씨가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을 걱정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것도."

A씨가 또 다른 봉지를 내밀었다. Y씨가 좋아하는 초콜릿이었다.

"언제 이런 것까지 기억했어요?"

"그냥... 봤지."

A씨가 쑥스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서 Y씨는 어린 소년을 봤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그래서 서툴게라도 노력하는 소년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


A씨와 Y씨의 이야기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하다.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산다.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누군가는 버림받은 상처를, 누군가는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그리고 그 상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이런 것에 집착하는지, 왜 이런 것을 두려워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상처받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A씨에게 밥은 엄마였다. 그리운 엄마, 닿을 수 없는 엄마, 그래서 더욱 간절한 엄마. Y씨에게 밥을 해주는 것은 존재의 증명이었다.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버려지지 않는 것,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의 확인.

두 사람은 밥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툴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밥 한 그릇의 의미


한국인에게 밥은 특별하다.

"밥 먹었어?"가 인사말이 되는 나라. 밥심으로 산다고 하는 나라.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하는 나라.

우리에게 밥은 단순한 탄수화물이 아니다. 그것은 정이고, 사랑이고, 관심이다.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밥을 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다.

A씨가 밥에 집착한 것도, Y씨가 밥 해주는 것에 의미를 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국인의 DNA에는 밥을 통한 사랑의 표현이 새겨져 있으니까.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혼자 밥을 먹는다. 혼밥, 편의점 도시락, 배달 음식...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이 더 외롭고, 더 불안하고, 더 우울한 것은.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 밥을 해줄 사람도 해 먹을 사람도 없다는 것. 그것이 현대인의 고독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밥, 아내의 밥


A씨에게는 두 개의 밥이 있었다.

하나는 어머니의 밥. 늘 부재했지만 그래서 더 간절했던, 가끔 나타나 행복을 주었던 환상 속의 밥.

다른 하나는 아내의 밥. 매일 차려지지만 그래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하지만 사실은 사랑과 정성이 담긴 현실의 밥.

A씨는 오랫동안 아내의 밥에서 어머니의 밥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어머니가 아니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없었다. 아내는 아내였고, 아내의 밥은 아내의 사랑이었다.

상담을 통해 A씨는 깨달았다. 자신이 찾던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 차려지는 밥상에, 도시락 통에 꼭꼭 눌러 담긴 밥에, "많이 드세요"라는 아내의 말에.


치유는 현재진행형


1년이 지난 지금, A씨와 Y씨는 여전히 부부다.

완벽한 부부는 아니다. 여전히 A씨는 가끔 무뚝뚝하고, Y씨는 가끔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아침마다 Y씨는 밥을 짓는다. 예전처럼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A씨는 그 밥을 먹으며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어요."

단순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고마움, 사랑, 미안함, 그리고 약속. 앞으로도 함께하겠다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가겠다는.

어제도 Y씨는 물었다.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요?"

"당신이 해주는 거면 다 좋아."

"에이, 그래도 먹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럼... 김치찌개?"

"또 김치찌개?"

두 사람이 웃었다. 평범한 대화, 평범한 일상.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있다. 서로의 상처를 알고, 이해하고, 품어주는 특별함.

밥을 넘어서

최근 A씨에게 변화가 생겼다.

주말이면 Y씨와 함께 장을 보러 간다. 예전에는 귀찮아했지만, 이제는 함께 고르는 재료들이 자신들의 일주일을 채울 것이라는 생각에 즐겁다.

"이거 어때요?"

A씨가 배추를 들어 보였다.

"좋네요. 김치 담가볼까요?"

"김치를? 우리가?"

"한번 해봐요. 어렵지 않아요."

그 주말, 두 사람은 난생처음 김치를 담갔다. A씨는 배추를 씻고, Y씨는 양념을 만들었다. 서툴고 어설펐지만, 함께했다.

"이거 먹을 수 있을까?"

A씨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만든 건데 맛있을 거예요."

일주일 후, 김치가 익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맛을 봤다.

"어? 먹을 만한데?"

"그러게요. 우리가 만든 게 맞아?"

두 사람이 웃었다. 김치는 완벽하지 않았다. 좀 짜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함께 만든 첫 작품이었다.


새로운 의미의 탄생


이제 A씨에게 밥은 더 이상 엄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내의 사랑이고, 함께하는 일상이고, 나누는 시간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채우는 것이다.

Y씨에게도 밥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일상을 나누는 매개이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두 사람은 밥을 통해 서로를 만났고, 밥으로 인해 갈등했고, 밥을 넘어서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의 밥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에게도 '밥'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진짜 밥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다. 관심, 인정, 사랑, 안전...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목마르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건강하게 채울 수 있는지.

A씨는 밥에서 엄마를 찾았지만, 결국 찾은 것은 현재의 사랑이었다. Y씨는 밥으로 존재를 증명하려 했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과거의 상처에 매여 현재를 놓치지 말고, 환상을 쫓느라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가는 것.

마지막 식사

오늘도 A씨와 Y씨는 함께 저녁을 먹는다.

특별할 것 없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김치와 나물. 하지만 그 평범한 밥상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상처받은 두 영혼이 만나 서로를 치유해가는 이야기.

"잘 먹었습니다."

A씨가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많이 드셨어요?"

"응. 배불러."

"디저트로 과일 좀 먹을래요?"

"좋지."

Y씨가 사과를 깎는 동안 A씨는 설거지를 했다.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 자연스러운 일상. 그 자연스러움을 얻기까지 그들은 많은 눈물과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화가 더 소중하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평화.


밥을 넘어서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수많은 부부들을 떠올렸다.

밥을 둘러싼 갈등을 겪는 부부들. "왜 맨날 김치찌개야?" "반찬이 이것뿐이야?" "집밥이 그립다" 같은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부부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밥은 밥이 아니라고. 그 안에는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고. 서로의 상처가, 그리움이, 결핍이 숨어있다고.

A씨와 Y씨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들이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밥 속에 숨은 엄마를, 사랑을, 상처를 발견하고 마주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일상의 사소한 갈등 속에서 진짜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 상대방의 행동 속에서 상처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것.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이 만나 서로를 치유하는 것.

A씨와 Y씨는 오늘도 함께 밥을 먹는다. 내일도 함께 먹을 것이다. 밥을 넘어서, 사랑으로, 이해로, 그들은 계속 함께할 것이다.

때로는 밥 한 그릇에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당신의 밥 한 그릇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가?


(출처: 김호순 외 『모신엄마』, 2023: 170-174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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