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다시
1년 후, 같은 시간
또 새벽 4시다.
하지만 1년 전과는 다르다. 이제 나는 이 시간이 왜 특별한지 안다. 무의식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간, 그래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퇴직한 지 1년 반. 대학원생이 된 지 1년.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 많은 것이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변한 것이 아니라 알게 된 것이다. 늘 그곳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본다.
상담실 창문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도 그렇다. 작년에는 그저 나무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봄에 새잎이 돋고, 여름에 무성해지고, 가을에 노랗게 물들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그 순환 속에서 나는 인생을 본다.
내담자들이 가르쳐준 것
이 1년 동안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스승이었다.
우울증으로 찾아온 30대 여성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왜 항상 3년마다 우울해질까요?" 함께 탐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3년마다 사업을 바꿨다는 사실이었다. 3년이라는 주기가 그녀의 무의식에 '상실의 시간'으로 각인된 것이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40대 남성은 새벽 3시에 꼭 깬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가 새벽 3시에 돌아가셨다. 10년이 지났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포로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건축가라는 것을. 과거가 우리를 만들었지만, 우리가 과거를 다시 쓸 수 있다는 것을.
수박 농부의 메시지
그 수박 농부 출신 물리학 박사의 기사를 다시 읽었다.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겁니다."
단순한 말이지만 깊은 진실이 담겨 있다. 40세에 시작해서 52세에 박사가 되었다. 12년. 누군가는 길다고 하겠지만, 어차피 12년은 흐른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문제일 뿐.
나도 50대 중반에 새로운 시작을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고 믿는다. 10년 후 6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지금 시작한 것에 감사할 것이다.
할머니가 남긴 것
작년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96세.
임종을 지키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할머니의 삶, 그 고통과 인내,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들.
돌아가시기 3일 전,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셨다. 그리고 나를 부르셨다.
"너는 글 쓰는 재주가 있다. 우리 집안 이야기를 써라."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낡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전쟁의 기억, 남편을 잃은 슬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문장을 발견했다.
"나는 새벽 4시에 꼭 깬다. 그 시간이 제일 무섭다. 혼자인 것 같아서."
나의 새벽 4시 각성이 할머니로부터 온 것일까? 3대에 걸친 불안의 전이? 이제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사랑도 강박이다
아내와의 관계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26년간 함께 살면서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투사한 이미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이것을 알게 된 후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다. 완벽하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투사하고, 전이하고, 반복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한다.
마지막 상담
어제 한 내담자가 마지막 상담을 하고 떠났다.
6개월간 함께한 50대 여성. 퇴직 후의 공허함, 정체성 혼란으로 찾아왔던 분이다.
"선생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다니 위로가 됐어요. 이제 저도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요."
그녀를 보내며 깨달았다. 상담사의 역할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것이라는 걸. 치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라는 걸.
무의식과 친구가 되다
이제 나는 무의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무의식이 어두운 지하실 같았다. 들어가기 무섭고,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의식은 보물창고다. 거기에는 내 모든 경험, 모든 기억,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다.
새벽 4시에 깨는 것도 이제는 괴롭지 않다. 오히려 선물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가장 고요한 시간, 무의식이 가장 활발한 시간. 이 시간에 나는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직관적이며, 가장 나다워진다.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당신도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일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 패턴을 알아차렸거나, 반복되는 꿈의 의미를 이해했거나, 가족의 역사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깨달았거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변화는 거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
당신도 당신만의 새벽 4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불면의 시간이든, 불안의 시간이든, 창작의 시간이든.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다.
50대 중반에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으로서, 52세에 물리학 박사가 된 수박 농부를 보며 용기를 얻은 사람으로서, 나는 확신한다.
늦은 때란 없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새벽 5시, 해가 뜬다
이제 새벽 5시다.
창밖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나도 일어날 시간이다.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린다. 오늘은 대학원 수업이 있고, 오후에는 상담이 두 건 있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평범한 하루란 없다는 것을. 매일이 새로운 발견의 기회이고, 매 순간이 무의식과의 대화라는 것을.
이 책을 마치며 독자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불안, 당신의 우울, 당신의 반복, 당신의 꿈. 그 모든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적 경험이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아이이면서 동시에 성장하는 어른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의 무의식을, 당신의 그림자를, 당신의 어둠을.
그것들도 모두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
새벽 4시에 깨어나는 당신도, 한낮에 일하는 당신도, 저녁에 잠드는 당신도.
모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