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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콰이 Oct 20. 2021

명의를 찾아서

명의를 찾아서 

엄마는 한의원에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뾰족하게 생긴 그것! 날카로운 침이 내 연약한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 무섭고 싫었다. 

침을 맞는 것보다는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일이 훨씬 수월했다. 


예전에 사고로 무릎을 크게 다쳤는데 한번 다친 무릎은 원래 상태로 회복되질 못했다. 그 후로 가끔씩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아픈 경우가 있었다. 


혼자 지낼 때 무릎이 아팠다면 정형외과에 갔을 텐데, 엄마는 내 무릎 통증을 지켜보더니 함께 한의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엄마의 설득이 워낙 집요해서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 가는 길에 엄마는 나에게 아픈 걸 참는 미련한 녀석이라며 나무랐고, 한국 사람은 동양 의술이 최고라며 동양 의술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의 길고 긴 얘기가 끝나갈 때쯤 우리는 쓰러지기 직전인 아주 낡은 건물 앞에 멈췄다. 엄마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나 : 엄마 한의원은 어딨어?


엄마 : 이 건물 꼭대기


나 : 여기 버려진 건물 아니야?


엄마 : 시끄러워! 어여 올라가.


나 : 엘리베이터도 없잖아!     


층계가 유난히 높은 계단을 엄마를 따라 올라갔다. 한의원 앞에 도착했을 대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 건물에 올라올 정도면 허리나 무릎이 아주 건강한 거라고.     


문을 살며시 열자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신발을 벗고 엄마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낡은 책과 물건들만 보였다. 


그때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고 나를 남겨둔 채로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나가자 할아버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워.”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누울만한 침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여기저기 둘러보자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맨바닥에 누우라는 얘기였다. 나는 당황하며 맨바닥에 누웠고 할아버지는 상자 하나를 들고 와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온갖 침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침을 맞으면 다 괜찮아진다며 침을 하나 꺼내 들었다. 길쭉한 침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이 떨릴수록 내 심장 박동수도 빨라졌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씩 웃더니 침을 내리꽂았다. 할아버지의 침은 엄마의 말대로 역시 달랐다.      


‘청바지 위로 침을 꽂다니!!!’


수많은 침들이 청바지를 뚫고 들어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여긴 한의원이 아니었다. 절망의 비명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엄마에게 의술이란 공식적인 라이선스가 아니라 바로 믿음이었다.      


무서워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그 침을 맞고 나서 내 무릎은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엄마의 믿음이 나에게도 전해진 걸까. 믿음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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