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향수
안방에 있는 화장대 서랍을 열었는데 향수병이 여러 개 보였다. 향수병을 보니 모두 남성용이었다.
엄마는 진한 향을 싫어해서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아빠가 향수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향수병을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향수였다. 요즘에는 향수도 성별 구분 없이 사용하니까 아빠 향수 중에서 은은한 향을 골라 내 옷에 뿌렸다.
외출 후에 집에 돌아왔는데 아빠가 날 보자 코를 킁킁거렸다.
“너 내 향수 뿌렸어?”
단 번에 향을 알아채는 아빠의 후각에 깜짝 놀랐다. 아빠 향수를 몰래 뿌렸다고 혼나는 건가.
살짝 눈치를 보며 아빠를 봤는데 아빠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향 어때? 냄새 좋지? 이번에 샀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현을 했다.
아빠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웃었고 새로 산 향수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나에게 말했다.
향의 베이스가 무엇인지 잔향은 어떤 느낌인지 등. 아빠가 향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니까 신기했다.
나이가 들고 노년이 되면 미적인 것에 관심이 줄어든다고 지레짐작했는데 그건 내 고정관념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건 계속 생길 수 있다.
문득 엄마는 아빠의 향수 냄새를 좋아할지 궁금했다. 아마 엄마의 반응은 부정적일 것 같았다.
엄마와 길을 걷다가 진하게 향수를 뿌린 사람이 우리 곁을 지나가면 엄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향수를 몸에 들이붓고 다니나, 아이고 코가 막히겄다.”
나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서 바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향수 많이 뿌리던데 괜찮아? 엄마 향수 냄새 싫어하잖아.”
“그놈의 향수만 뿌리면 머리가 지끈거려도 뭐 어쩌겄어 내가 참아야지, 아빠가 몸에서 냄새날까 봐 그런다는데.”
처음에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깔끔하고 단정했고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행동을 안 하려고 항상 노력했다.
아빠는 당신이 노인이 됐고 몸에서 노인 냄새가 나면, 그 냄새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나이가 들어서 체취가 변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냄새를 놀릴 때 사용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의 몸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체취 때문에 자신의 몸에 대해서 초라하게 여기거나 움츠려 드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젖내를 풍기던 귀여운 아기도 언젠가는 노인의 몸이 된다. 순수하게 태어났던 존재가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 만나게 되는 몸이 바로 노인의 몸이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눈부신 몸이지 않을까.
이 험한 세상을 버틴 대단한 몸이다.
땀을 흘리는 아빠의 냄새도, 향수의 시원한 향이 나는 아빠의 냄새도 모두 아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