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늘을 까고 나는 컵라면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봤다.
한지민과 정해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조용한 카페에 앉은 두 남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엄마와 나는 눈을 떼지 않고 화면 속 그들의 모습을 숨죽여 봤다. 심각해 보이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눌지 궁금했다.
한지민 : 큰일이 생겼어요.
정해인 : 무슨 일이요?
(잠깐 뜸을 들이다가)
한지민 : 당신을 사랑해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엄마의 목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염병~ 지랄들 헌다.”
엄마 말 때문에 웃겨서 나는 라면을 뿜을 뻔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마늘 까기에 집중했다. 로맨스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여도 참아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걸까.
오글거리는 배우들의 대사가 낯간지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염병과 지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마비된 상태니까.
아빠 때문에 화가 날 때면 엄마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눈이 삐었어 삐었어.”
엄마도 젊은 시절에는 콩깍지에 씌어서 아빠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모두 다르다. 천천히 언제인지도 모르게 스며드는 사랑도 있고, 어떤 계기가 때문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 때문에 사랑하게 된다.
엄마는 아빠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만드는 모습에 반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낡은 물건을 고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 엄마는 큰 목소리로 잔소릴 한다.
“그냥 갖다 버려! 징글징글햐.”
징글징글한 아빠의 저 모습에 반했던 그녀는 옛날에 사랑에 빠졌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