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지내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건 엄마와 아빠가 부부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엄마 아빠가 부모의 위치에 있지만,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함께 사는 남녀 사이라는 것이다.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면서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바로 엄마 아빠의 싸움, 그러니까 노부부의 싸움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된다는 거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우면 무섭고 불안했는데, 성인이 된 어른 자식이 부모님의 싸움을 보게 되니까 화도 나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부모님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사이인데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갈등을 한다.
“과일은 식전에 먹여야 좋다.”
“아니다 식후에 먹어야 좋다.” 와 같은 별 거 아닌 일로 싸움은 시작된다.
싸움의 불씨는 뜬금없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이십 년 전에 서운했던 일로 더 크게 싸운다. 막장 드라마의 놀라운 전개와 비슷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부모님이 젊었을 때는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사느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공유하다 보니 사소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침에 불같이 화내고 싸워도 저녁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찬 얘기를 하며 웃는 부모님.
냉탕과 열탕을 오고 가는 부모님 모습에 적응하는데 나도 꽤 시간이 걸렸다.
사이좋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자식의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희망은 희망일 뿐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엄아 아빠는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부부’ 사이니까.
엄마 아빠의 싸움을 내가 막을 수 없겠지만, 제발 나에게 이런 질문은 안 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잘못했지?”
“아빠가 틀렸지?”
이 질문은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들어봤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와 같은 무서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