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2장
『도덕경』 12장은 많은 시간 생각에 머물게 했다.
어찌 보면 불교, 특히 초기 경전과 닮아 있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육근(六根) — 눈, 귀, 코, 혀, 몸, 의식이 외부 대상(六境)에 집착할 때,
그 접촉에서 일어나는 의식 작용을 통해 번뇌와 무명이 자라난다고 말한다.
한자, 음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령인이롱
五味令人口爽,
오미령인구상
馳騁畋獵令人心發狂,
치빙전렵령인심발광
難得之貨令人行妨。
난득지화령인행방
是以聖人爲腹不爲目,
시이성인위복불위목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도덕경 12장 에서 말하는 오음, 오색, 오미 역시 불교에서 말하는 감각적 자극이 지나치면 사람의 분별력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특히 “달리며 즐기는 사냥이 사람 마음을 미치게 하고,”라는 문장은
단순히 쾌락 중독과 정신적 흥분, 그리고 때로는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또한 "얻기 어려운 재화”라는 문장은 불교의 탐심과 연결된다.
희소한 것에 대한 집착은 탐욕을 부르고,
탐욕은 결국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자신을 잃게 만든다.
불교에서 말하듯,
욕망에서 비롯된 갈망은 다시 갈망을 낳고, 그 끝은 없다
노자는 이 모든 유혹을 경계하며 말한다.
성인은 눈을 위하지 않고, 배를 위한다.
왜 '배'라고 했을까?
여기서 한참 생각이 머물렀다.
그러다 문득 노자 하면 도교, 도교 하면 양생술이 떠올랐다.
배에는 하단전이 있다.
하단전에는 우리 몸의 정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다.
감각 자극이 과도해지면 이 정기가 소모되어,
'기'의 순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정’은 생명의 근본이다.
‘배를 위하는 것’은 곧 정기를 지켜내는 일,
즉 나의 중심을 지킨다는 뜻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눈과 귀가 끊임없이 자극에 끌려다닌다.
그래서 더더욱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정’을 쓰고 있는가?
무엇으로 나를 채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