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인문에세이
지금 우리는 모두 성공을 원한다.
좋은 학교,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 팔로워 수, 좋아요 숫자까지.
모두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속도는 빠르고, 비교는 일상이며, 남보다 앞서야 안심을 한다.
하지만 금세 불안에 휩싸이고, 문득 공허함이 밀려온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멈출 수도 없는 시대.
그렇게 끝없이 달려가는 오늘의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정약용과 그의 가족들의 삶이 떠올랐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개혁가.
그리고 유배지에서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쓴 사람.
그의 삶을 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젊은 시절엔 화려했다. 하지만 중년에는 깊은 고통 속에 잠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시기는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였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서 밀려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의 중심에 도달했다.
벼슬길에 있던 시절보다, 유배지에서의 시간이 더 깊고 넓었다.
겉으로 보면 실패였던 그 시절,
그는 비로소 ‘정약용’이라는 사람이 되었다.
정약용의 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암(俟菴), 태수(苔叟), 탁옹(濯翁) 등 삶의 자취와 마음결을 담은 이름들이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주로 그가 강진 다산초당에서 지낸 시절을 기려 ‘다산(茶山)’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의 삶을 이야기할 때는 본명 ‘정약용’, 그의 학문과 사상을 말할 때는 호 ‘다산’이라 부를 것이다. 본명과 호가 서로 다른 결을 지니듯, 글에서도 맥락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려 한다.
이 글은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전통적인 평전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약용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닿고 싶다.
그는 어떻게 고통을 견뎌냈을까.
어떻게 혼자서도 매일같이 앉아, 글을 쓰고 또 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보았을까.
나는 그 물음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정약용이 도달한 삶의 깊이를 좇아간다면
그의 깊이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의 높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수많은 실패와 상실을 껴안으며 얻게 된 삶의 깊이였다.
또한, 고전과 시대를 새롭게 읽어내며 사람과 제도를 향한 길을 찾은 사유의 깊이였다.
더 나아가, 고통 속에서도 자식을 걱정하고 제자를 사랑한 정情의 깊이였고,
억울함을 넘어서 타인의 삶까지 함께 끌어안으려 했던 인仁의 깊이였다.
이 깊이를 따라가며 나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길을 함께 묻고자 한다.
정말 우리는 깊이를 잊어버린 채, 성공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