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소설〕동주의 도(道)

by going solo


동주는 버스에서 내렸다.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리던 참에

훅 덤벼드는 바람이 오히려 후련하다.


모든 날, 모든 것엔 좋은 게 꼭 있다.


조심해, 나한테 달려들면 다 베어 버릴 거야,

오늘처럼 잘 벼린 칼날 같은 바람이 매서운 날,

코끝이 그것에 베여 빨갛게 물들면

움츠리지 말고 차라리 고개를 들어 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있을 거야.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온 세상이 투명한 유리 속에 들어 있는 것 같게 해.


하늘이 무겁게 축 쳐진 날엔

겨울답지 않게 푹하듯이

오늘은 춥긴 하지만 그 대신 맑고 청명하잖아.

바람만 없다면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로 가득해.

오히려 좋은 것들이 어디나 있다니까.


얼른 집에 가야지.

예닐곱 평 원룸

알량한 발코니 창으로 고요히

바람을 벗고 들어온 햇살을 맞으며

하늘을 봐야지.

거기서 차갑게 베인 몸을 따듯하게 덥히며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지금 나한테 벌어진 일

내 몸에 누군가가 왔다는데

건강한 심장이 달린 어떤 생명체가

내 안에서 살고 있다는데

나와 어떤 줄로 이어져 있다는데


나는 고작 스무 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아홉 살이었고

생명을 품기엔 내 몸은 너무 작고

마음도 보잘것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분명 피임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던 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햇볕이 가득 들어 따뜻하고

조용한 내 집에서

생각을 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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