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와 빨강이>

〔소설〕동주의 도(道)

by going solo

택배 박스를 열었다.


알뜰하고 반듯하게 담겨 있는 옷가지들, 신발이랑, 책들.

노아와 커플로 샀던 초록색 꽈배기 니트도 얌전하게 누워있다.

크리스마스 날에 우리 이거 입자.

초록이 동주와 빨강이 노아가

아기 예수 오신 날에

함께 예배도 드리고

읍내에 나가 돈까스도 먹고

인생 네 컷도 찍고

아무리 추워도 자전거도 타고 노래방도 갔다가

눈이라도 내려주면

초록이랑 빨강이는 더없이 행복하자.

했는데


고생한 우리

11월에 먼저 행복하고

그날은 더 행복하자고 하면서

내일 그거 입고 나와

수능 다음 날 먼저 입었다.

크리스마스에 하기로 한 것도

그날 다 했다.

노아와 동주는 행복하기가 그지없었다.


톡창을 보았다.

읽씹이다.


일단 알아야 해.

그날

초록이 동주와 빨강이 노아가

서로 난생처음으로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됐던

그 밤에

바짝 긴장한 노아가 이건 꼭 해야 해 라면서

피임 했는데

어떻게 나에게 아기가 올 수 있었는지

알아야 뭐든, 어떻게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이상하잖아.


그러니 노아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노아도 기절하겠지.

이제 와서 그걸 왜 묻냐고 할 테고

그럼 사실은 이렇다고 말해야 할 거고

노아는 기절할 것처럼 놀란 다음에

뭐라고 할까.


‘우리 딸 동주야

혼자 있어도 맛있는 거 꼭꼭 챙겨 먹고

잠은 꿀같이 쿨쿨 자고

그동안 고생한 거

행복으로 싹 날려버려요!


우리 딸의

빛나는 스물의 날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옷가지 사이에 끼어 있는 카드 속 엄마의 말들이

눈치라곤 1도 없는

멍충이들 같다.


맛있는 거는 고사하고

뭐든 먹으면 울렁거리는데

그래서 병원에 갔던 거고

내과에서는 별 소견이 없다면서

혹시 여지가 있으면

산부인과에 가보랬다.

원래 생리 불순이었다니까

그거랑 상관없대.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서 확인해보래.


잠은 어제까지 꿀처럼 자긴 했지만

오늘부터는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고

나의 스물이 빛날 수 있을지는 더 모르겠고

너무 암담해.


-야, 노아,

전화 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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