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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ing solo Mar 29. 2024

<나쁜 새끼Ⅰ>

〔소설〕결국 해피엔딩 1


오빠는 겨울 같은 그날 밤에

맨발에 쓰레빠를 끌고 대문을 나가서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저벅저벅 허공을 딛고 올라

하늘로 솟아버린 건가?

더 낮고 낮은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

아무도 찾을 수 없게 꺼져 버린 거야?

아니면 그토록 차디 찬 어둠에 겨워

훨훨 수증기로 증발해 버린 거니?


그래서 지금은 어느 구름에 묻어 떠다니다가 가눌 수 없이 무거워지면

비가 되어 내리는 거야?

물이 된 오빠는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또다시 공기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로 가는 거야, 오빠?

난 왜 자꾸 오빠가 스스로 간 거 같은 생각이 들지?


오빠가 앉아 담배 피던 자리

헐거운  안쪽에 담배 갑이 있다. 라이터랑,

스무 개 중에 일곱 개가 남아있다.


아버지 말을 거역하고 있었구나.

더욱 은밀하게

더욱 나쁜 마음으로

나한테도 들키지 않을 만큼 감쪽같이

아버지에게 대들고 있었구나.

근데 그 거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토록 강렬하게

오빠로 하여금 아버지에게 대들 수 있게 해 준 것에 이끌려

너는 나간 거야?

혹은 무엇 때문이든 돌아올 수 없었던 걸까?


채찍 같은 무궁화나무로 매를 맞던 그날,

내 얼굴에 그어진 빨간 불 자국을 보며

입술을 깨물던 오빠의 눈빛은

온전한 분노였나.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거 같아.


니가 맞아 죽던 말던

내가 아버지 방에 안 들어갔다면

오빠 종아리에 휘감긴 시뻘건 금에서 배어 나온 피에

미쳐 돌지 않았다면

오빠를 감싸 안아 등짝에 채찍을 맞아 내 마음이 다치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지랄발광을 하고 나쁜 아버지라고 대들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이성을 잃지 않았을 거고

여느 날처럼 어느 쯤에서 매질을 멈췄을 거고

난 얼굴에 채찍을 맞지 않았을 거고

그 모든 꼴을 보고 엄마는 주저앉아 울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오빠의 분노는 그 후 몇 달의 일상으로 덮여 없던 것이 되지 않았을까.

몰래 숨어 몽롱한 연기로 더는 속을 태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렇다고

그 분노에 미쳐서 니 발로 나간 거면

조완 너는 진짜 나쁜 새끼야.


근데 오빠,

난 오빠가 차라리 나쁜 새끼였음 좋겠어.

무엇에 겨워 니 발로 나갔길 바래.

니 멋대로 집 나갔으니 지지리 개고생 하다가

거지꼴로라도 들어와라.

제발.


만약 그런 날이 다시 오면

꾹 참을게.

아버지는 담배는 피지 마라시 던 그 말에 따를 수 있을 정도로만 때리시고

오빠가 녹아내리듯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들어가서 발광할게

아버지의 화가 약간 식었을 때 그렇게 말할게

아버지는 자식들 마음도 모르는 나쁜 아버지라고

지랄을 떨게

오빠의 여린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깨지지 않을 만큼만

오빠를 덜 사랑할게.


오빠야, 조완아

내 마음에 가시처럼 돋아나는

이 불길한 마음을

어쩌면 좋아.


너무 무서워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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